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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욱
명지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 교수
우리학회 학술부회장
(yukim@mju.ac.kr)

                      



“여보세요? 여기 제주 경찰서인데요? 00리조트에서 절도 사건이 접수되었습니다! 귀하께서는 용의자로 지목되었습니다.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1박 2일 제주 일정을 마치고 김포 공항에 도착하여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받은 전화였다. 2009년 학회지 편집위원장을 맡아 1년의 편집을 끝내고 수고하신 위원 분들과 제주 워크샵을 개최하고 나서였다. 전화 주신 경찰이 CCTV 사진을 확인 해 달라며 메시지를 보내줬는데, 흐릿하지만 우리였다. 영화에 나오는 은행 강도들처럼 유유히 손에는 무언가를 잔뜩 들고 레스토랑을 빠져나오는 세 명의 무법자들! 황야의 총잡이들처럼 양손에 총대신 술을 잔뜩 든 흐릿한 실루엣. 맞았다! 우리는 용의자였다.


전날 마지막까지 남은 술꾼들이 술을 찾다 찾다 찾은 곳이 마감한 리조트 내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어디다가 연락해도 연락이 닿질 않아, 우리의 전화번호가 포함된 메모를 남기고 최선을 다했다면서, 마지막 밤을 불태우려 나오던 우리였다. 우리는 강도였다. 리조트에서 메모를 뒤 늦게 발견하고, 술값을 보내드리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한켠 두려웠지만 유쾌한 기억이었다. 그 때 우리는 그랬다. 같이 사고치고 같이 해결하고, 또다시 같이 사고 칠 계획 세우고. 10년도 훨씬 넘은 에피소드지만 아직도 신이 나서 그 이야기를 하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무법자들...


지나고 보니 어설프기도 하고 철드는 게 아주 느렸던 것 같다.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기도 했으니 말이다. 서로가 너무 좋아서 경쟁하듯 일하고 이야기 하고 술 마시고 뻗어 실려 나가는 친구 같은 귀한 주위 사람들... 어중간한 세대라 일컬음을 받고  있는 우리는 그래도 '말(言)이 도장이다!' 라는 신념으로 살았으리라.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하고 서로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쉽게 부탁하고 책임을 너무 쉽게 지어왔던 사랑스런 동지들이었다.

 

추억을 공유하며 언제나 만나면 즐거운 그 시절 소중한 분들은 지금은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업적을 쌓으며 고군분투 하고 계신다. 이 나라의 지반영역을 세우셨던 분들의 영광을 기리는 동시에 초연결 세대로 지칭되는 젊은 피들 사이에 끼인 세대로 이제는 어중간하지 않은 어른으로서 리더역할을 하고 계신다.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지반’이라는 분야의 토대를 닦고 세계적 엔지니어링의 역군을 길러낸 이 땅의 아버지들 말이다. 지반의 역군들 말이다.


은퇴가 아직도 먼 듯한데, 이제는 빨리 취해버리는 술자리에서 '피곤'을 이야기 하다가도 기술자로서의 ‘책임’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그래도 지반엔지니어의 위상은 우리가 더 높여 놓고 나가야 하지 않겠냐고. 우리도 우리의 후배들이 나중에 우리처럼 옛날 일들 회상하면서 낭만스럽게 살아가게 만들어 놔야 하지 않겠냐고. 더욱 더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대에 낭만을 이야기하기가 조금은 쑥스럽지만, 되돌아보면 우리를 견디게 해준 주춧돌이 추억에 깃들어 있던 그 시절의 '낭만'이었으리... 아마도 다음 번 건배사는 이것으로 대신해야겠다.


“내가 마! 비록 도라지 위스키는 몰라도, 낭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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