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I-95 고속도로 종단 후기



alt


최근 1년 사이에 미국 보스턴에 거주하면서 남동부의 플로리다 주와 북동부의 메인 주를 모두 잇는 고속도로인 I-95(Interstate highway 95)를 왕복으로 주행할 기회가 있었다. I-95 고속도로의 총연장이 약 3,100km이며, 거기에 더하여 마이애미에서 미국 최남단 키웨스트를 왕복하고, 메인 주에서 캐나다의 오타와까지 다녀왔으니 결과적으로는 오타와에서 키웨스트까지 왕복으로 약 8,000km 연장의 고속도로를 주행한 셈이다.


나는 한국 도로 현장에서 만 7년을 토목기사로 도로 시공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미국 고속도로를 이 정도로 주행했다는 것은 미국과 한국 고속도로와의 차이점이 계속 눈에 밟히는 채로 운전을 한 셈이다. 때때로 주행 도중에 두 나라 고속도로의 차이점이 떠오르면 잊어버릴세라 종종 이를 녹음하면서 운전하였다. 주야간 주행을 하면서 때로는 잠이 쏟아지거나 몸이 피곤하기도 하였으나, 위도별로 시시각각 변하는 북미의 대자연과 대서양 연안을 따라 보이는 반짝이는 수평선, 그리고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하늘을 두 눈으로 만끽하면서 드라이빙 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에 있어서 다시없을 소중한 기회가 아니었을까.


한국의 지형과 국토의 넓이가 미국의 그것과 기본적으로 다르고, 기후가 상이하므로, 두 나라의 고속도로의 장단점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국 고속도로의 장점을 알아보면서 이를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본다면 이 또한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alt


미국 고속도로와 한국 고속도로의 차이점은 무엇보다도 주행성, 지형적 특징, 배수 및 조경에 있다.첫 번째로는 미국 고속도로의 주행성이다. 미국의 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는 한국과 달리 전 구간에 걸쳐 과속방지 카메라가 없다. 따라서 끝없이 뻗은 고속도로의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속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주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때때로 경찰이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데, 규정속도를 비 상식적으로 위반하여 운전하는 경우에는 경찰에게 단속되어 티켓을 끊을 수 있다. 하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카메라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미국 고속도로가 가진 크나큰 장점이다. 또한 자율주행 기능인 스마트 컨트롤과 크루즈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면 장거리 운전을 더욱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즉, 일정한 주행속도를 설정해 두고 앞차와의 적정 간격을 설정해 두면 차량이 해당 속도로 달리다가 앞차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브레이크가 자동으로 작동하여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노선 이탈을 방지하는 기능을 함께 적용하여 운전한다면 장거리 운전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 즉,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 기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가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미국 고속도로의 지형적 특징이다. 미국 동부의 고속도로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이 평지나 완만한 구릉지에 설치되어 있다. 실제로 내가 I-95 고속도로의 남북을 종단하여 주행해 본 결과, 볼티모어 항 하부를 통과하는 Fort McHenry 터널을 제외하고는 고속도로 전 구간에 터널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낮은 높이의 절토사면조차 매우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절토사면이 없다는 것은 각종 사면보호공이 불필요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고속도로 전 구간이 평지에 설치되어 있으며, 상행선과 하행선의 간격이 매우 넓어 당연히 가드레일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고속도로 전 구간에 가드레일이 잘 없기도 하거니와, 버지니아주부터 플로리다주까지는 가드레일 설치구간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림 3은 미국 고속도로의 기본 평면도라고 볼 수 있는 도면이다. 중앙분리대가 약 2개 차선의 넓이로 설치되어 있고, 잔디로 덮여 있는 것이 특색이다. 넓은 중앙분리대의 장점은 반대편 차량의 헤드라이트 눈부심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드레일 설치와 같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사고의 위험을 줄여줄 수 있다. 길어깨 부분의 폭도 매우 넓어 비상상황 발생 시 차를 세우기도 편리하다.


alt


마지막으로는 미국 동부 고속도로의 배수와 조경이다. 미국 동부는 한국과 달리 연중 고른 강수량을 바탕으로 평지에 고속도로가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고속도로에 대부분 설치되어 있는 길어깨 부분의 콘크리트다이크나 L형측구, 도수로, V형측구가 기본적으로 없다. 또한 절토사면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산마루측구나 소단측구와 같은 절토부 배수시설이 필요가 없다. 대신 고속도로 중앙부와 길어깨 주변에 넓은 폭의 잔디가 설치되어 있어서 우천 시 빗물과 노면의 비점오염수를 잔디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 고속도로 전 구간에 설치되어 있는 배수시설이 미국 동부의 고속도로에서는 대부분 생략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조경 또한 매우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분리대와 길어깨 부분의 조경이 오직 잔디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한국 고속도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아름드리 조경수와 각종 조경시설물을 미국 동부 고속도로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거니와, 비탈면에 설치하는 녹화공법은 미국에서는 화초하나 없이 대부분 잔디로만 이루어져 있다. 잔디 설치비용이 높지 않을까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넓은 면적의 잔디를 숏크리트처럼 씨앗 뿜어붙이기로 빠른 시간 내에 설치하곤 한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동부 고속도로를 한국 고속도로와 간단히 비교해 볼 수 있다. 미국 동부 고속도로는 고속주행 본연의 목적에 최적화되어 있는 장점이 있으며, 지형적, 기후적 특징에 힘입어 비탈면 보호공과 배수공, 터널공이 대부분 생략되어 있다. 조경공 또한 단순히 잔디로만 이루어져 있으므로 잔디를 정기적으로 깎는 예초용 차량만 투입하면 된다. 즉, 단위 길이당 건설 비용과 유지관리 비용이 한국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절감이 되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미국 같은 강대국이 고속도로를 한국 대비 상당히 저렴하게 건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보니 어찌 보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토목 엔지니어들은 나름의 자부심이 있는 것이, 미국 대비 국토는 상대적으로 좁지만 대신 높은 산과 협곡이 가득하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다이내믹한 나라에서 흙을 쌓고, 교량을 세우고, 산을 깎고, 때로는 산을 뚫어가면서 전 국토를 종횡으로 연결해 왔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와같은 국토의 제약이 후발 주자였던 우리나라 토목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흙,돌 그리고 나' 다른 기사 보기
prev
next
SNS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