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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 제
㈜에스텍컨설팅그룹 소장
우리학회 부회장
(geo2001@empas.com)

                      



‘포스트 코로나, 언택트, 그린 뉴딜, 뉴노멀, 스마트건설..’ 등은 무거움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익숙해져야 하고 언젠가는 또 과거가 될 현재의 핫한 용어들이다. 아무리 급변하는 시대일지언정 과거와 현재 없이 미래를 얘기할 수 없기에 지반공학기술 관련 실패, 실수, 사고 등 조금은 씁쓸하고 고루하게 여겨지는 용어의 기억을 소환해본다.


‘실패박람회’라는 것이 있다. 실패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희망과 재도전을 응원하기 위하여 다양한 실패사례를 모아 전시하고 실패의 경험을 사회적인 자산으로 축적하고 재기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나 정책을 소개하는 박람회로써 행정안전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하여 2018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실패를 주제로 한 유일한 박람회이다. 이 박람회 이름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매우 참신한 느낌이 들면서도 늘 성공담이 주목받는 세상에 자신의 아픔을 드러낸다는 것이 무척 어려울 텐데 과연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욱이 성공이라는 목표를 위해 실패를 디딤돌로 삼자는 상투적 취지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짧은 경륜의 새내기격 행사임에도 매년 성황리에 개최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쯤 되면 필자의 의도가 보일 것이다. 아 지반공학 분야의 기술자들도 실패박람회를 가능하다면 정기적으로 개최해서 지반구조물의 안전과 기술진보를 추구하는 장이 마련되기를 기대하는 공감대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언젠가 접했던 매체 기사내용을 떠올려 소개해본다. 세계 곳곳에서 실패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매년 10월 13일 ‘실패의 날’ 행사가 개최된다. 국민 4분의 1이 지켜볼 정도로 관심이 높다. 학생·교수·창업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실패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실패를 축하해 준다. 미국에서는 스타트업 실패를 기념하는 ‘실패 페스티벌’이 열리고, 글로벌 패션 브랜드 베네통은 청년 실업자를 후원하는 ‘올해의 실업자’ 캠페인을 진행한다. 스웨덴 헬싱보리와 미국 할리우드에는 ‘실패 박물관’도 있다. 실패가 달가울 순 없지만, 인생을 성공이나 실패로만 구분 짓지 말자는 취지다. 2008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페일콘’은 벤처 사업가들이 모여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하는 행사다. ‘실패’(fail)와 ‘콘퍼런스’(conference)의 합성어에서 행사명을 따왔다. ‘실패’를 주제로 삼은 이 회의는 이제는 프랑스, 이스라엘 등 전 세계 도시에서 열린다. 2012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실패 공유 네트워킹 운동 ‘퍽업 나이츠’도 있다. ‘퍽업’은 ‘개판’ ‘엉망이 되게 함’이라는 뜻으로, 퍽업 나이츠는 여러 차례 시도했다 ‘개판’을 만들어본 사람들이 그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Fuck Up Night는 비즈니스나 프로젝트에서 겪은 실패의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는 전 세계적인 네트워킹 행사의 이름이다. 앞 자들만 따면 FUN인 유쾌하고 재미있는 이 행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FUN은 멕시코에서 시작되어 파리, 뉴욕, 스톡홀롬 등 약 50개 국가의 150개 도시에서 전 세계적으로 개최되어 오고 있는 행사다. 흔히 실패하면 우리는 심각하고 우울한 기분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특히 헬조선, 흙수저, 금수저가 최근 가장 핫한 키워드로 떠오른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온통 실패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 이들의 밤은 슬픈 게 아니라 즐거움 그 자체이다. 이러한 행사들에서 우리가 실패한 이야기에 주목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는,


첫째, 누군가의 성공한 이야기는 그 사람의 성공 수단이지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실패를 즐기되 한가득 무엇인가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재도전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세 가지 이유를 지반공학 분야와 연계시켜 그 의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실패박람회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다양한 실패 경험을 나누고 재도전을 장려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의 자산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패란 무엇인가 : 실패는 더 큰 성공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며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다. 실패를 통해 재도전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성공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실패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앞으로 더 나아질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가까워진다면 한결 여유로움을 가지고 직면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실패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뜻한 대로 되지 않고 그르치는 것을, 실수는 부주의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우리 지반공학 분야에서도 늘상 있는 현실문제가 아닌가. 우리의 업은 사람의 안전과 문명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나 끊임없이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고로 생명을 앗아가고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학회지 과월호 기고내용을 인용해보자면 “지반공학회 차원에서는 실패사례를 중심으로 수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선임기술자가 젊은 기술자에게 기술을 공유할 수 있게 하여야 할 넓은 장터를 제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라는 제언이 있었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지반공학 분야가 올바르게 자리매김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며, 이를 위해서 정부부서, 관련 학회와 협회와의 협력을 통하여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중략~ 이러한 의미에서 지반 미래포럼은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으며, 내년에도 좋은 성과를 기대해 봅니다.”라는 행사 후기가 있었다. 이들은 결국 실패박람회와 동질적인 문제인식과 해결방안 모색에서 출발해야 성공이라는 도착점에 안착할 것이다.


학회행사의 중심인 학술회의에서의 사례연구는 늘 성공작, 우수작 등만이 소개되어 정작 문제 발생 원인과 대처 사례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미진한 것이 현실이며,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사고사례에 대한 학회의 학술/기술/자문 용역수행이 빈번하게 수행되고 있으나 현상 발생 초기 언론보도 등으로 인지하게 된 이후에는 지반공학 전공분야 기술자들에게 그 사례가 어떤 과정을 거쳐 해결되었는지 정보 공유가 불명확한 실정이다. 실패로 끝난 사례가 쉽게 잊히지 않고 또 실패를 꼭꼭 묻어두었다가 성공하고 나서야 꺼내 보이는 후일담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용기를 내 꺼내 보이고 공유해야 할 이유일 것이다. 차제에 실패박람회와 맥락을 같이하는 지반공학 기술자들의 실패사례, 사고사례, 극복사례를 학술적/기술적으로 더욱 상세히 다루고 원인과 결과를 공유하면서 그 개최성과를 평가한 후 학회 차원의 정례화로 이끈다면 다가오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성공박람회”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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