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alt

정 문 경 
우리학회 회장
(mkchung@kict.re.kr)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임인년을 돌이켜 보면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세계경제는 난관에 빠졌고, 세상은 ‘세계화의 재구성’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굳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어려운 국내경제 중에서도 건설산업은 크게 타격을 입어, 여기에 종사하는 우리 회원님들의 걱정과 한숨이 깊은 한해였습니다. 


코로나라는 외생변수의 영향은 2022년 전반기까지만 해도 2021년 못지않아 학회의 정상적 활동에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다행히 봄학술대회에 이어 미국에서 개최된 미국지반공학회(ASCE Geo-Institute)와의 성공적 워크숍을 전환점으로, 6월 이후부터는 코로나 상황 호전과 더불어 학회활동도 상당 수준 정상화되었습니다. 동남권의 지역강좌, 서남권연약지반세미나를 위시한 지역위원회의 역동적 활동과 각 전문위원회의 내실 있는 활동이 살아났습니다. 9월에는 오래 준비한 ISSMGE TC104의 제10차 ICPMG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함께 개최한 가을학술발표회에서는 가덕도신공항의 성공적 건설을 위해 지반공학자의 역량을 집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학회는 1월에 ACE Forensic Engineering 학술대회와 홍콩 지반공학회(HKGES)와의 제1회 Joint Workshop 등 두 건의 국제학술행사를 필두로 계묘년 여정을 시작합니다. 늘 그러했듯 회원 여러분의 애정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외생변수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의 종점과 시기는 예측하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도약의 해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롤드컵 우승팀 주장 ‘데프트’가 시작하고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이 인용하여 유명해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문구를 새기며 새해를 시작합니다.  


계묘년 새해, 존경하는 12,600여 모든 회원님들의 건승과 행운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alt

         


계묘년 새해, 학회를 뒤돌아보며,,,


   

alt

정 충 기
우리학회 고문
서울대학교 교수
(geolabs@snu.ac.kr)

   



시간의 흐름과 함께 건설 분야에서 지반공학의 위상은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겁니다. 그러면 그 시작은 어땠을까요? 잠깐 시간을 과거로 돌려보겠습니다. 


해방 무렵 우리나라 건설 분야는 척박했습니다. 해방 이전 토목 기술은 대부분 일인들이 담당했고, 고등 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학교 이상의 교육기관을 졸업한 우리나라 토목인은 100명 남짓이었습니다. 대부분 총독부와 유관 공공 기관에 근무하였고, 차별 등으로 인하여 상급 관료 및 기술자로서 역할을 한 사람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해방과 함께 일인 기술자들은 모두 돌아갔고, 소수지만 이들 우리나라 토목 기술자들이 토목을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사람은 모자라고, 할 일은 많았습니다. 더욱이, 토목인을 배출할 대학도 둘 밖에 없어서, 당분간은 그 어려움이 지속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대학원이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구조, 지반, 수공 등의 전공 구분도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각자가 근무한 관공서의 부서에 따라서 전공이 결정되었을 겁니다. 따라서 도로, 철도, 상하수도, 하천 및 댐 등 관할 시설물이 무엇이냐가 각자의 전공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도로, 철도 및 교량, 댐 등에 대한 전문기술자들은 있었지만, 지반공학을 주전공으로 전담하는 기술자를 찾기는 힘듭니다. 다만, 대학의 토목공학과는 구조, 수공, 토질, 위생(상하수도), 측량 전공의 교수진으로 구분하여 구성되었으므로, 토질을 담당한 교수님들을 지반 전공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한편, 대학원 과정을 살펴보면, 1954년 처음으로 토목 전공 석사 학위자가 배출되었지만, 지반을 전공한 석박사는 한동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지반을 전공한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일까요? 전공 구분이 명확한 학계를 살펴보면, 해방 직후인 1945년 경성대학 토목공학과에서 토질역학을 강의한 정현숙 교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1946년 3월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한 변보엽 교수님 이어서 정인준 교수님과 임병조 교수님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병익 교수님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반 전공으로 석사(서울대, 1960년 2월), 박사(서울대, 1973년 2월)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60~70년대 관공서와 산업계 등 현업에서는 지반 부서도 없고, 지반 전공을 따로 구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학회 설립 이전 지반 전공자는 대학원에서 지반을 전공으로 석박사를 취득한 사람 위주로 분류할 수 밖에 없지만, 아직 대학원 교육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수는 제한적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현업에서도 지반 조사를 수행한 전문가들 그리고 설계사 및 시공사에서 지반 관련 문제를 다룬 엔지니어들을 지반 전공으로 구분을 할 수 있지만, 그 수는 적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1970년대까지 겉으로 들어나는 지반 전공의 연구자 및 기술자의 수는 적을 수 밖에 없고, 확실한 대상 시설물이 있는 타 분야에 비해서 지반 분야의 위상도 중요도에 비해서 낮게 평가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의 건설분야 대표학회인 대한토목학회는 1951년 설립되었습니다. 피난지 부산에서 어렵게 설립되었습니다. 관공서에 계시거나, 계셨던 분들이 설립을 주관하였습니다. 이는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당시 토목 기술 전문가들이 대부분 해방 이전 관공서에 근무하였기 때문입니다. 학계에는 해방 전에는 일인들만 있었고, 해방 이후 급작스레 10여분이 교수로 임용되셨지만, 이 분들 중 일부는 해방 이후의 혼란기에 행방불명되는 등, 실질적으로 학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분들은 서너분에 불과하였습니다. 따라서 대한토목학회는 학회라고 하지만 학술적인 활동은 1년에 한 두번의 학술강연이 전부이고, 시방서와 토목용어집 그리고 정부의 건설 행정에 대한 자문 등 관공서 대상 업무를 주로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토목인들의 집결체로서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대한토목학회는 우리 학회가 설립되기 이전에는 지반공학인들이 국내에서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학술 마당이었습니다. 그러나 1975년에야 첫번째 학술발표회가 개최되었으며, 이전에는 학술활동이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부 전공에 대한 확실한 구분도 없었습니다. 이후 회원의 증가와 함께 학술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세부 전공이 구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반공학에 대한 활동은 타전공에 비하여 제한적이었습니다. 당시 지반인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도 하였지만, 지반 분야의 특성상 건설 분야의 모든 시설물에 관련되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반 분야를 주대상으로 하는 관공서의 부서도 없을뿐더러, 지반공학이 주가 되는 구조물이 적고, 지반공학의 학술적 중요성에 대한 몰이해와 인식부족 등으로 인하여 토목학회 내에서 활동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후 토목 분야의 지반공학인들이 수가 늘고, 토목뿐 아니라, 자원공학의 암반 및 터널공학, 건축의 기초 및 터파기, 농토목의 흙댐, 지질학의 지질공학과 지질 조사 등의 전공자들과 협업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지반공학의 학술과 기술 발전에 대한 보다 효율적 소통의 필요성 그리고 국제적 활동을 위한 국내 대표기관의 설립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이러한 대내외적 요구를 수용하기 위하여 1984년 78명의 회원으로 한국지반공학회(한국토질공학회)가 출범하였습니다.


초창기에는 회원 대부분 친분이 두터운, 가족과 같은 학회였습니다. 이후, 80년대 후반 국내 대학원 활성화에 따른 지반 전공자들의 급증 그리고 경제성장과 건설 기술 발전에 따라 지반 분야 종사자들의 증가와 함께 학회의 외형이 큰 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학회 활동에 참여하는 진성회원의 수가 학회 설립 10년만에 1,400여명으로 18배 증가하였고, 2000년 이후 3,000명을 상회하는 진성회원을 보유하고, 가입회원 수 기준으로는 현재 13,000명을 넘는 국내 최대 건설분야 전문학회의 외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10여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우리나라 건설경기의 침체, 회원들의 참여도 저하, 2030 젊은 회원의 급격한 감소는 학회 활동에 불안감을 갖게 합니다. 그 동안 제19차 세계지반공학대회의 개최를 비롯하여 국제 Joint workshop을 확대하고, 기술위원회와 지부 및 지역발전위원회의 활동 강화, On-line News letter 발간, 지반미래포럼의 개최 등 코로나 시국 속에서도 대내외 활동을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직은 꺾인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학회 활동에 보다 근본적인 전환점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고, 저탄소 시대의 에너지 기술, 노후 인프라의 혁신적 개발, 디지털 빅 데이터를 활용한 인프라 관리 등 미래 건설 기술 분야에서 지반공학은 그 기반을 이루며, 특히 불확실성과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한 지반공학은 미래 기술과 접목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준비하고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차고 넘칩니다. 


해방 후 77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지반공학회는 설립 후 2000년대 초반까지 급격하게 성장하였습니다. 이후 잠시 침체를 겪고 있지만, 이는 또 다른 큰 도약을 위한 웅크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계묘년 새해입니다. 이제 웅크린 검은 토끼가 힘차게 뛰어 올라 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반공학 그리고 한국지반공학회의 밝은 미래를 꿈꿔 봅니다.

신년사/권두언' 다른 기사 보기
prev
next
SNS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