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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윤 섭

Norwegian Geotechnical Institute

(노르웨이 지반연구소)
Offshore Energy Division
선임연구원
(yus@ngi.no)

   


1. 인천대교편

           

지금으로부21년전.

1999년 유신코퍼레이션이라는 설계사에 입사하자마자 현장파견을 나섰다. 임무는 당시 OO대교(현. 인천대교) 해상 시추조사(offshore site investigation) 와 해상 물리탐사(offshore seismic survey)를 수행하는 것이였다. 12km 노선을 따라 해저지반을 음파탐지기(sona)로 검측하고, 탄성파 탐사(refraction, reflection survey)로 지층상태를 분석한다. 1km 간격으로 시추조사를 수행하는데, 조사 기준은 연암굴착 3m가 나와야 시추조사가 종료되는 기준.


당시 현장 감독관으로 캐나다 AGRA라는 회사에서 온 Robert씨는 배불뚝이 동네 아저씨같이 수더분했지만, 검사관으로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채취된 샘플이 바지(barge)위로 올라오면, 그 투박한 손으로 무언가를 꼼꼼히 적어내려 간다.


손으로 찔러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심지어 입속에 진흙 샘플을 털어 넣고 오물오물 대다 또 무언가를 메모한다. 99년 혹독한 한 겨울 열악한 조건에서 시작했던 해상조사는 이듬해 5월까지 계속되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주탑 위치 10번 공에서 지반조사를 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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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이 인천 남항에서 출발하여 낚시배를 타고 현장 바지로 이동. 낚시집 사장님은 부대찌개를 한 가득 냄비에 담아 건내준다. 그걸 들고 바지를 타고 올라가 점심시간을 기다려 끓여 먹는 부대찌개 맛은 아직도 잊을 수 가 없다.


평소 숙력된 기술로 조사를 해 내려가던 기술자들이 얼굴이 심각하다. 수심 20미터, 해저 지반 40미터지점에서 쨈이 난 것이다(쨈: 시추조사 케이싱이 땅 속에 밖혀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온갖 장비를 동원해 빼 보려고 하지만 꼼짝하지 않는다. 온 종일 씨름하다 포기하고, 조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공업용 다이아몬드 비트와 케이싱을 땅 속에 고스란히 묻어야만 하는 조사회사의 손해가 막심하다.


그렇게 힘들게 다시 시작한 조사는 이번에도 순조롭지 않다. 오늘 따라 거친 바람도 우리편이 아니다. 바지에서 60미터 이하 내려갔지만 채취되어 올라오는 샘플마다 기준이 미달되어 작업이 끝이나지 않는다. Robert씨는 계속 파라는 지시를 내린다. 70미터, 80미터까지 내려갔다. 이제 작업을 끝내자는 기술자들과 계속 파내려 가라는 Robert씨 사이에 신경전이 날카롭다.


기술자들은 더 깊이 내려가면 또 다시 쨈이 난다고 작업을 껴려하고, 급기야 회사 사장이 상기된 얼굴로 바지위로 올라와 온갖 욕설을 퍼 붓으며, 기술자들 철수를 명령한다. Robert도 양보하지 않고, 모든 현장 상황을 기록하여 보고한다. 드디어 폭발한 사장은 샘플을 모아 놓은 시추박스를 집어들어 광활한 바다에 던지려고 한다. 나는 일단 흥분한 사장을 말리며 진정시키지만 소용 없었다. 사장은 옆에 있던 케이싱을 집어 들더니 Robert를 죽이겠다고 달려든다. 나는 Robert를 대피시키고, 직원들은 사장을 말렸다.


해가 지고 흥분은 가라 앉았다. 나는 사장에게 담배 한대를 건내며, 상황을 진정시키고 5미터만 더 파 보자고 제안했다. 마지막 굴착이 잘 마무리 되고, 결국 조사는 총 85미터에서 감독관 승인하에 무사히 종료되었다. 그때 당시 해저 지반조사 샘플 채취 최고 기록이였다.


이렇게 해상지반조사는 끝이나고, 지금에 인천대교가 완성되었다. 총 연장 18.4 km. 영종도와 송도를 잊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교량의 시작은 그렇게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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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천국제공항편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유신코퍼레이션에 근무할 당시 단일 공사로는 최대 규모. 지금까지도 지반 설계 용역으로는 최대 프로젝 중 하나인 인천국제공항 부지조성 공사(2단계)가 발주되었다. 지반조사비만 100억이 넘었고, 본사에서 영종도로 파견한 합사 인원만도 70여명. 내가 일하던 지반팀도 현장 파견팀을 꾸린다. 당시 신촌 생활을 접고, 새로이 강남 시대를 화알~짝 열며 힘차게 나래를 펴보려던 찰라. 나는 영종도라는 황량한 곳으로 최소 3 년간 현장 파견을 발령 받는다.


당시 영종도국제공항(현. 인천국제공항)은 영종도와 용유도를 제방으로 연결하고, 바닷 모래를 채워 만든 인공섬으로 지반이 연약하여 단기, 장기 지반 침하가 예상되는 지역.


우리 현장팀의 미션은 4000미터에 달하는 제3활주로와 제4활주로, 유도로와 계류장 지반의 연약지반을 개량하여, 활주로 공사시 지반에 문제가 없도록 지반을 설계하고, 각종 계측기를 매설하여 지반의 장기거동을 예측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달려도 달려도 끝없이 황량한 모래바람이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컨테이너 사무실과 숙소. 컨테이너 한켠에 배정 받은 우리들 숙소는 5인 1실이였다. 이렇게 나의 현장 생활은 시작 되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 지반공학자로서 길을 걷는 나의 인생의 황금기였고,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값진 경험의 현장이였다. 약 3년이 지나 시설공사팀과 현장 바통을 터치하기까지, 제3활주로 포장 건설을 위한 연약지반 설계 미션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지금도 인천공항에 착륙이 가까워 오면, 나는 창문 너머로 구석구석을 살핀다. 행여나 멈추지 않는 장기 침하로 활주로에 문제는 없는지... 계류장 포장은 문제 없이 유지관리가 되고 있는지...이것은 내가 거창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진 지반 공학자라서가 아니다. 단만 영종도 현장은 꿈과 열정이 있었던, 생각만 해도 아련한 나의 젊은 날의 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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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섬진강 하동 복합말뚝 시험시공 현장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당시 복합 말뚝(강관말뚝 + PHC말뚝) 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말뚝이 지금처럼 아주 보편화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 했던 시절. 당시 GS건설 기술본부에 근무하던 나는 복합말뚝 현장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섬진강 하동현장을 찾게 된다.


당시 아무도 해보지 않은 직경 1000mm 직경의 대구경 콘크리트 말뚝과 강관말뚝을 연결한 복합말뚝에, 각종 계측기를 붙여 놓고 매입 말뚝 및 항타 말뚝을 시험 시공하는 현장. 공장에서 제품 반입부터, 현장 섭외까지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당시 현장 소장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적당한 사이트를 제공 받고, 시험을 하게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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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 가지 징크스가 있었다면, 현장을 나갈때 꼭 끼던 나만의 장갑이 있었는데, 이 장갑을 끼지 않으면, 현장 일이 잘 안 풀린다는 것.


그 날은 아침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현장 직원들의 언성이 높아가고, 현장 소장의 신경은 날까로워 진다. 그러던 와중에 내 장갑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소장님...제...장갑이...없어졌어요.”


“뭐? 장갑? 저쪽에 장갑 많잖아! 하나 맞는 걸로 하나 껴!!”


“아니..제 장갑이...”


“하나 맞는 걸로 끼라니까!!!"


“실은...제가 징크스가....그 장갑을 안 끼면 현장이 잘 안 돌아가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현장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 모두 작업 중지. 모두 신과장 장.갑. 찾.아!!!!!”


갑자기 현장 작업을 중지 시키고, 현장 직원들에게 장갑을 찾으라 지시하시는 것이다. 급기야 여기 저기 무전을 치시니, 중장비 기사들이 모이기 시작. 굴삭기, 덤프에서 내려 다들 장갑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소장님께 괜찮다고 말씀드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중장비 기사들은 점점 열을 받기 시작.


이쯤에서 그만 했으면 했지만, 소장은 이제 본인도 오기가 났는지, 두 팔을 걷어부치고 직접 장갑을 찾고 계시는 것.

나도 안절부절 못하고 장갑을 찾는 척 이리저리....그러다...느낌이 이상해 주머니를 뒤져보니..


오마이갓! 내 작업복 뒷 주머니에 장갑이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상황에서 장갑이 주머니에 있었다고 말했다간, 맞아 죽을 상황.잠시 고민하다, 장갑을 한 발치 멀리 던져 놓고는....


“소장님! 여기..장갑 찾았어요!!!”


이제는 말 할 수 있습니다. 그 날 저 때문에 공기가 좀 지연되었다면, 죄쏭합니다요~소장님~

장갑 덕분인지 복합말뚝 현장시험이 모두 잘 수행되었고, 지금의 복합말뚝이 보편적으로 활용되는데는 이러한 뒷 이야기가 있었다.

           

           


4. North Sea 북해 지반조사편

           

지금으로부터 1년전.

20년전 처음으로 나갔던 해상지반조사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번엔 북해 현장으로 지반조사를 나간다. 4500톤급 Drill ship을 타고 수심 400m 아래 지반을 CPTu로 조사하고 PC로 시료를 채취, 현장에서 간단한 토질 시험을 하고, 불교란 시료를 회사 실험실까지 전달, 각종 실내 토질 실험을 수행하고, 지반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주어진 임무.


하루는, 미흡하다고 생각되는 위치에 지반 샘플링을 다시 하기 위해서 배를 돌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지반조사에 있어서는 지반공학자가 이곳에 발주처 client를 대신하여 나와 있기 때문에 발주처 client 입장에서 그 결정을 승인하는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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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계속 가던 길을 가서 작업을 서둘러 끝내고 싶은 마음이였겠지만, 나는 배를 돌려 샘플링을 다시 하자고 제안했고, SS(shift supervisor)는 이를 받아드려 육중한 배의 키를 돌려,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 다시 샘플을 채취했다. 내가 타고 있는 배 한척을 하루 빌려 운영하는데 비용이 85kEuro정도가 든다. 미안하고도,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이는 프로젝트를 위한 것이였고, 다행히도 가장 긴 원하는 샘플을 채취할 수 있었고,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만족하며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나는 2013년 부터 NGI에서 일을 하고 있다. NGI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최고의 지반연구소 중 하나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지반 컨설팅/연구소이다. 이유는 지반에 관련된 모든 일(조사, 실험, 설계, 해석, 모니터링, R&D) 을 직접하고 각분야에 최고의 전문가들이 있다. 얼마전에 시추기 3대를 구입해 직접 육상 시추조사를 수행하며, 회사 지하에 있는 workshop에서는 실내, 현장 실험과 관련된 모든 기계장비들을 직접 수리, 개조한다.


NGI는 1953년에 국가 연구소로 설립되어 현재 민영화 되었으며, 지난 60여년동안 많은 지반공학 분야 기술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본사 외에 Trondheim(노르웨이), Houston(미국), Perth(호주)에 지사를 두고 있다.


1953년 노르웨이 지반을 구성하고 있는 연약한 점토인 Quick clay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1970년대 노르웨이 에너지원의 95%를 차지하는 수력발전을 위한 댐 설계 및 시공, 지하철과 철도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인프라 시설의 지반관련 설계를 수행하였다. 1970/80년대 North Sea에서 오일이 발견되면서, 오일과 가스 생산을 위한 해양지반조사 및 해양토질실험, 해양구조물 기초설계를 통해 크게 발전하였다. 1980년대 당시 토질실험에 대한 전문성과 기술력을 인정받아 영국 퀸 엘리자베스 여왕이 실험실에 방문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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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에는 Vassdalen 지방 큰 눈사태 발생으로 눈사태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현재 겨울에 자주 발생하는 눈사태 저감을 위한 연구뿐만 아니라 산사태, 지진, 홍수 및 쓰나미 등 지반관련 자연재해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1900/2000년대는 세계에서 최장대 도로터널인 라르달lærdal 터널의 설계와 시공에 참여하였으며, 가더문Gardermoen 공항 설계 및 하뢰야Hærøya 산업지역 오염된 지반과 물을 다루는 지반환경에 대한 연구도 시작하였다. 2000년대 이후 해양 지반조사와 해저 물리탐사를 통한 지반 모델링, 신재생 에너지 분야 중 고정식 해상풍력기초(monopile, suction anchor, GBS, jacket foundation) 및 부유식 해상풍력 앵커 설계 등 대한 컨설팅 및 R&D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내가 속해 있는 해양 에너지 분야에서는 해양 지반조사 및 해양토질 실내실험, 해양구조물 기초에 대한 설계, 부유식 구조물에 대한 앵커 설계 및 시공, 석유시추를 위한 지반 및 암반공학, 해양구조물에 대한 모니터링, 복잡한 지반공학 문제 해결을 위한 수치해석 등을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지반관련 분야에서 NGI는 1990년 이후 매년 5% 이상의 꾸준한 성장율을 보이며 발전하고 있고, 현재 300여명의 남, 여 균형잡힌 엔지니어 인력풀을 구성하고 있으며, 전 직원 중 35% 정도가 외국인으로 약 40여개국의 다양한 국적의 엔지니어가 협력하며 근무하고 있다.


최근 COVID-19으로 전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르웨이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NGI에서는 실험실과 현장팀을 제외한 모든 직원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디지털플랫폼 개발을 가속화하여 현재 거의 모든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NGI는 전통적인 지반공학에 대한 컨설팅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인구증가, 기후변화, 이산화탄소 저감 등 여러가지 환경 문제와 이로 인한 극심해지는 자연재해, 크린 에너지에 대한 수요 증가 등 여러가지 도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NGI는 전 세계 학계, 연구소 및 산업계와 협력하고 있다.


나는 21년 전을 돌아본다. 그리고 오늘 나의 모습을 본다. 아직도 매일 새로운 도전에 부딛치고, 깨지고, 절망하고 거기서 또 새로운 것을 배운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정년을 훌쩍 넘으신 나이에도 프로그램을 돌려가며, 보고서를 손수 작성하시는 분들(소위 대가라 불리우는) 을 종종 보게 된다. 평생을 지반공학에 종사하셨던 그 분들도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데 즐거워 하며, 그분들의 경험을 나누는데 주저하지 않으신다.


나는 앞으로도 지반공학 엔지니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적어도 아주 좋은 유튜브 아이템을 찾아 전향하지 않는 한 ^^).

그러면 나도 앞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고, 나의 경험을 나누며 이 길을 같이 걷고 싶다.


배움에는 끝이 없겠지만, 끝이 있다면 그것은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소개

신윤섭 선임연구원은 유신코퍼레이션(1999-2008), GS건설(2008-2013)에서 근무하였으며, 2013년부터 현재까지 노르웨이 지반연구소 NGI(Norwegian Geotechnical Institute) 해양지반에너지팀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주요 업무로는 해양 지반조사, 해상풍력 기초 설계, 해양구조물 기초 및 앵커설계, 해양지반 진동 및 위험도 해석 등 해양지반관련 조사 및 설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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