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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로 가는 길은 특히 멀고도 험했다. 거리로만 따지면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에서 비행기만 한 번 타면 됐지만 비행기 왕복 요금과 1인당 10만원 정도의 제도 입장료(환경보존금), 마지막으로 갈라파고스 여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요트 투어비를 모두 합치니 당시 가난한 배낭여행자였던 우리가 부담하기에, 상상하기 싫은 금액이 산정되었다. 아무리 큰 마음 먹고 떠난 세계여행이라 해도 그 큰 돈을 덜컥 내고 다녀올 만큼 배짱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이었다.


며칠을 고민 후 포트폴리오를 담은 노트북을 들고 갈라파고스 투어를 운영하고 있는 요트 회사의 본사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왜? 맨땅에 헤딩하듯 현지의 요트 회사들과 부딪친 요지는 간단했다. “나는 한국의 프로패셔널 포토그래퍼다. 당신의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갈라파고스 투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멋지게 사진으로 담아주겠다. 그러니 요트에 두 자리만 만들어 달라.” 사실 이 밑도 끝도 없는 제안서를 들고서 만리타국의 요트 회사를 방문하며 시원하게 거절당하기를 수 차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다섯 번째 프레젠테이션을 시도한 회사에서 마침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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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키펠 호'를 만난 건 갈라파고스 제도에 들어선 다음 날이었다. 바다 위 묵직하게 떠 있는 모습이 여행자의 가슴을 마구 흥분시켰다. 각 섬마다 각기 다른 종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갈라파고스에서 다양한 동물들을 만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트.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스노쿨링에 지친 몸을 달래며, 햇살 좋은 날에는 갑판 위에서 선탠이라는 호사도 누리고, 그렇게 놀다가 지쳐 잠자리에 들면 알키펠은 유유히 바다를 흐르며 다른 섬으로 이동한다.


이튿날, 두 번째 섬 위에 올라선 이방인들을 가장 먼저 반긴 건 물개 가족이었다.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뒤척거리는 아기 물개와 그 한가로운 물놀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 물개. 평온한 물개 가족의 시간을 방해할까봐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물개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를 신경 안 쓰는 동물들은 물개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육지 거북이들 또한 낯선 이들의 방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식사에만 열중하는 모습에 오히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는 우리들이 더 머쓱해하기도 했다.


“저기 봐~ ‘블루풋 부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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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간 하늘 빛으로 뒤덮인 발을 가지고 있는, 갈라파고스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새다. 저 멀리 블루풋 부비 두 마리가 엉거주춤 커다란 발을 들고 뒤뚱거리며 걷고 있다. “저건 부비 댄스라는 거예요. 지금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엉거주춤한 동작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양발을 한 번씩 들었다 놓으면서 커다란 날갯짓을 펄럭이고, 그 뒤에 울음 소리를 애절하게 한 번 그리고 다시 발걸음, 날개짓, 울음. 댄스라고 하기에는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댄스라 부르고 사랑 고백이라고 이해하니 수줍은 소년의 마음과 같은 어색한 동작들이 오히려 아름답게 보였다.


블루풋 부비에서 시선을 옮기자 오렌지 빛깔로 채색된 이구아나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는 당당한 자태에 이끌려 슬며시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를 의식한 듯 살며시 포즈를 취하는 듯하다. 덕분에 친구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듯 이구아나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그때, 믿지 못할 광공이 펼쳐졌다. 부비새와 이구아나가 천천히 사람의 뒤를 따라 걷는 게 아닌가?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나선 아이들처럼, 보이지 않는 미소를 머금은 듯한 표정으로 사람의 뒤를 따라 걷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진다. 동물과 사람이 이렇게 사이좋게 함께 거닐 수가 있구나!


갈라파고스에서 가장 놀라웠던 모습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자이언트 거북이나 펭귄들과의 조우가 아니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인간을 보고 전혀 놀라지 않는 동물들의 반응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이를 대하 듯, 또 하나의 거대한 동물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갈라파고스의 동물들은 우리를 거리낌없이 반겨주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날아가지 않는 새들, 물속에서 수영을 하면 어느새 다가와 함께 물장구를 치며 노는 물개들과의 물놀이는 갈라파고스에서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자 색다른 감정의 교류. 항상 좋은 모습의 인간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던 동물들은 그 어떤 사람들을 만나도 친구로 받아 들였다. 공존이라는 이름으로 사람과 동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오늘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곳. 이곳이야말로 인간과 동물이 함께 영원히 지켜야 할 지상낙원이다.





본문 속 여행지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는 에콰도르령 제도로 에콰도르 해안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1,00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갈라파고스 군도는 해류 세 개가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에 해양 생물들의 보고로도 알려져 있으며,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준 섬으로도 유명하다. 갈라파고스는 에콰도르 본토에 비해 1시간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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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철과 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을 출간했다. 이후 남편은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아내는 여행 기자와 웹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세상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딸, 란이와 두 번째 세계 여행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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