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그의 저서《이탈리아 기행》에서 시칠리아의 ‘타오르미나Taormina’를 ‘작은 천국의 땅’이라고 했다. 구불구불한 해안 도로를 따라 오르고 또 오르면 마침내 천국, 타오르미나가 나타난다. 단지 높은 곳에 있어서 천국을 닮은 것만은 아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푸른 이오니아해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집집이 놓인 발코니 앞에는 색색의 꽃들이 만발했다. 거리선 흥겨운 음악 소리가 끊이질 않고, 스치는 행인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도시 전체에서 느껴지는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가 난 천국의 그것 같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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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필코 파트너를 구슬려 근사한 레스토랑, 아니 싸구려 카페라도 들어가 느긋한 하루를 보내야겠다 생각했다. 여행을 시작한 뒤로 마음은 늘 한껏 여유롭고 싶었지만 가난한 여행자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워낙에 먹는 데에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는 파트너의 탓도 있었지만, 실은 빠듯한 예산에 쫓기다 보니 사치스러운 외식보다 실속을 챙길 수 있는 관광지 입장권이 먼저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느리고 평화로운 이곳에서 만큼은 우리만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는, 천국에 적응하지 못한 낯선 이방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오래된 도시답게 타오르미나에는 유난히 계단 골목이 많았다. 그 좁은 골목의 안쪽에는 어김없이 멋진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골목골목을 휘저으며 움베르토 1세 거리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사방이 탁 트인 4월 9일 광장이 나타났다. 내 마음을 읽은 걸까, 그도 천국 같은 이곳에선 마음이 동한 걸까? 광장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어느 골목의 계단 꼭대기에 있는 예쁜 레스토랑을 가리키며 “오늘 점심은 저기서 먹자!” 한다. 점심 한 끼 외식하자는데 이렇게 감동스러울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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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처음부터 3단 레스토랑을 차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처럼 계단 중간 중간에 테이블을 놓을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게 신기했다. 우리는 가장 높은 세 번째 단에 위치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신중하게 메뉴를 선택했다. 최종적으로 토마토 크림 파스타와 해산물 리조또를 주문한 후에야 고개를 들어 눈앞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광경이었다. 저 멀리 광장 난간에 기대어 선 사랑스러운 연인들과 화목한 가족들의 뒷모습 너머로 구름인지 바다인지 지상 세계인지 모를 파아란 아름다움이 넘실거렸고, 광장 중앙에는 거리의 화가와 행위 예술가들이 모여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또한, 1층 노천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라이브 재즈 덕분에 귀까지 호강하는 날···.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부르려는 찰나 ‘아! 그냥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만 왔다 갔다 하는 웨이터를 째려볼 뿐 주변에 있는 어느 누구도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음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대신 사람들은 애피타이저를 즐기며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풍경을 감상하였고, 혼자 온 이들은 각자 책을 꺼내 들어 읽고 있었다. 그들이 느린 게 아니라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가 틀린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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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유를 찾아 떠나온 여행이었는데, 왜 그리 앞만 보고 바쁘게 걸었을까? 누가 외식은 사치스럽고, 관광 입장권은 실속 있다 정의했는가? 그랬다, 마음이 원했던 여행은 이런 거였다. 시간과 예산 따위에 허덕이지 않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며 운치 있는 유럽의 풍경과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긋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맛있는 음식과 천국 같은 풍경이 함께하는 타오르미나의 오늘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일도, 모레도 이곳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맛있는 파스타를 먹으며 시간을 여유롭게 흘려보내면 좋겠다 생각했다. 명심하자. 잃어버린 여유는 스스로 찾지 않으면 결코 누릴 수 없다는 것을.


*타오르미나는 이탈리아의 남부에 위치한 시칠리아 섬 동쪽 기슭, 해발고도 200m의 구릉에 있는 도시다. 해안 경치가 빼어나고 기후가 온화하여 휴양과 관광의 도시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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