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시간을, 각기 다른 속도로 살아온 세대가 한 걸음, 한 순간을 맞춘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중년에 접어든 우리 부부, 열 살 딸, 그리고 70년을 살아오신 부모님. 세대가 다른 우리가 함께한 이번 여행은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서로의 속도를 맞추고, 같은 경험에 도전하며 진짜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으니까.


처음, 함께 뛰어들 용기


이번 가족 여행의 목적지는 세부. 푸른 바다와 넘실대는 파도가 반기는 곳이다. 70년 평생 바닷속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부모님과 스노클링이 처음인 딸. 그들은 과연 망망대해 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 부모님은 망설였고, 딸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 역시 설렘 반, 걱정 반의 마음을 안고 세부로 향했다.세부의 바다는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쨍하게 빛나는 태양 아래, 에메랄드빛 바다는 깊고도 넓었다. 여행의 첫 일정은 스노클링. 70대 부모님과 10살 딸이 함께하는 첫 스노클링이기에, 모두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코스를 찾는 게 중요했다. 이왕이면 넓고 흔들림이 적은 배, 스노클링을 하지 않아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여러 조건을 고려하다가 ‘크루즈 호핑’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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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요트가 바다 한가운데 멈추고, 드디어 바닷속으로 들어갈 순간! 


주저 없이 먼저 바다로 뛰어든 건 딸이었다.


“할머니! 여기 물고기 엄청 많아!”


손녀의 응원 덕분인지, 망설이던 부모님도 용기를 냈다. 조심스레 발끝부터 바닷속에 몸을 담그고, 이내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천천히 얼굴을 물속으로 가져갔다.


“우와! 멋지구나!”


연신 감탄을 내뱉는 부모님의 모습은 마치 아이처럼 순수하고 해맑았다. 그렇게 이번 여행의 첫 도전이었던 스노클링을 무사히 마친 뒤, 배로 올라온 부모님이 한 마디 남기셨다.


“이런 경험, 처음이야!”


그 한 마디가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부모님께,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이 바다가 또 다른 모험의 시작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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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아래, 또 하나의 세계


다음 날, 부모님과 아이는 체험 스쿠버 다이빙에 도전했다. 나는 그들의 첫 바닷속 탐험을 함께하기 위해 수업에 참여했다.


그러다 문득, 내 첫 스쿠버다이빙 경험이 떠올랐다. 10여년 전, 세계여행 중 처음으로 수면 아래의 세상을 만났을 때 말이다. 내 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와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과 눈을 마추쳤을 때는 마치 또 다른 우주를 탐험하는 듯한 전율이 일었다. 앞으로 내가 여행할 세상이 두 배로 넓어졌다는 벅찬 감정이 온몸을 감쌌던 기억···. 그리고 오늘, 그 감격을 부모님과 딸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수영장 교육을 마친 후, 해수면 아래로 내려갈 시간. 딸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닷속을 들여다보았다. 조그만 손가락으로 반짝이는 열대어를 가리키며 한껏 신이 난 표정이었다. 처음엔 힘들 것 같다며 고개를 가로젓던 부모님도 천천히 물속을 유영할 수 있게 되었다. 마스크 너머 보이는 세상이 점점 달라지자 그들의 눈빛도 바뀌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모두 같은 깊이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다. 


거대한 바다 속에서는 나이도, 경험도, 지나온 시간도 중요치 않았다. 오직 지금 이 순간, 함께 바라보는 경이로운 풍경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같은 시선을 나누었다. 수면 아래에서, 우리는 세대도 나이도 잊은 채 ‘바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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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산 캐녀닝, 힘들어도 좋아!


우리는 세부의 또 다른 자연을 만나러 가와산으로 향했다. 가와산은 세부 섬 남서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울창한 정글과 계곡, 폭포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다. 원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신성한 장소로 여겨온 이곳은 오늘날 모험과 힐링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캐녀닝은 가와산의 대표적인 액티비티로, 거친 계곡을 따라 점프하고 수영하며 자연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경험이다. 하지만 이 액티비티는 단순한 수영이 아니라, 용기를 내야하는 순간들의 연속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번 일정은 가족 모두에게 가장 도전적인 코스였다.


본격적인 출발 전 헬멧과 구명조끼를 건네받고 안전 교육을 받았다. 1km여 하늘을 나는 집라인이 첫 번째 관문이었다. 모두 통과. 


다음은 3M 점프 코스. 돌아가는 길은 없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내가 먼저 뛰어들었다. 이어 남편, 뒤따라 친정아버지와 어머니까지 차례로 뛰어내렸다. 마지막으로 딸 역시 주저 없이 물속으로 ‘첨벙’. 수면과 닿는 순간, 짜릿함과 해방감이 몰려왔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우리는 점프와 미끄럼타기를 반복하며 흐르는 계곡을 지나쳤다. 아버지는 “우리 세대에 이런 경험을 하다니, 정말 힘들었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씀하셨다. 


모험이 끝날 무렵, 우리는 모두가 한층 더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를 응원하며 뛰어내리고, 함께 물살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교감이 있었다. 가족 여행이 주는 값진 기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함께여서 더 값졌던 여행


가족 여행은 단순히 새로운 곳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순간 속에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다. 세대가 다른 우리가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같은 경험을 나누며 함께 웃고 도전했던 이 시간들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세부의 바다에서, 가와산의 계곡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용기를 내어 한 걸음씩 나아갔다. 부모님은 새로운 도전에 눈을 빛냈고, 딸은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더욱 키웠으며, 나는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많았지만, 여행을 마친 후에는 ‘함께여서 가능했다’는 확신이 남았다. 이처럼 여행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떠날 그날을 꿈꾸며, 우리는 일상의 자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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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철과 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을 출간했다. 이후 남편은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아내는 여행기자와 웹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딸과 함께 떠나는 가족 세계 여행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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