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 노르웨이를 달리다
지난 8월, 우리는 10살 아이와 함께 한 달 동안 캠핑카를 타고 노르웨이의 여름을 달렸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등 캠핑카로 가보고 싶었던 후보지가 몇 군데 더 있었지만, 결국 노르웨이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알레만스레텐’ 법 덕분이었다. ‘모두의 권리’라는 뜻을 지닌 이 법은 노르웨이의 전통 권리로, 모든 사람이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중시하며, 대부분의 자연에서 자유롭게 야영, 하이킹, 낚시, 수영 등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단,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며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을 전제로···. 우리는 이 법 덕분에 길 위를 자유롭게 달리며 캠핑의 천국, 노르웨이를 만끽할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길 한쪽 안전한 곳에 캠핑카를 세운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오늘의 우리집’이 되는 것이다.
걷다, 트롤퉁가를 향한 도전
이번 여정에서 가장 기대했지만 동시에 걱정도 가장 컸던 곳, 트롤퉁가에서의 1박 2일 캠핑이다. ‘트롤퉁가’라는 지명은 생소할지 몰라도, 사진을 보면 “아, 여기!” 하고 많은 이들이 알아볼 법한 여행지. 많은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에 올라있는 그곳, 바로 ‘트롤의 혀’라는 의미를 지닌 트롤퉁가다. 트롤퉁가 트레킹은 왕복 20km, 일반적으로 왕복 7~10시간이 소요되는 꽤 험난한 코스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일반적’이란 말은 의미가 없다. 세 걸음에 한 번씩 카메라를 들이미는 포토그래퍼와 10살 어린이가 함께하기 때문. 무엇보다 평소 등산과는 거리가 멀었던 우리 부부에게 이번 트레킹은 정말 큰 도전이자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당일 트레킹 대신 1박 2일 동안 천천히, 그리고 느슨히 걷기로 했다.트레킹의 아침이 밝았다. 지난 며칠 동안 과연 이곳이 여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살을 에는 날씨가 계속됐지만, 다행히 트레킹 당일 아침은 맑고 따스했다. 노르웨이의 여름은 자정에 가까워져도 훤히 밝기 때문에 우리는 오전 느지막히 첫 발을 내디뎠다.시작부터 가파른 돌무더기 오르막이 이어졌고, 내리누르는 중력의 압박에 온몸이 짓눌리는 듯 했지만 여기서 멈추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쉬지 않고 걸었다. 보폭이 거의 제자리걸음처럼 좁아졌지만 한 번 내디딘 발을 멈추지 않으려 애썼다. 자연은, 산은 우리를 끝없이 시험했다. 오르고 오르며 더 이상 힘이 남지 않았다고 느낄 때쯤 나타나는 내리막이 잠깐의 휴식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조금 숨을 돌리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이 우리를 다시 덮쳤다. 이 과정이 반복될 때마다 육체적인 피로는 점점 더 깊어졌다. 그럴 때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마치 우리를 위로라도 하려는 듯 나타났고, 우리는 그 풍경 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을 할 수 있었다.
오르다, 드디어 트롤의 혀 위로 오르다
우리 가족은 트롤퉁가까지 가는 데만 8시간이 걸렸다(이튿날 하산은 6시간 소요). 트롤퉁가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7시가 넘어 있었지만 여전히 눈부시게 밝았다. 드디어 트롤의 혀(Trolltunga)를 마주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흔히 보던 그 멋진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 했다. SNS 버전과 현실 버전이 공존하는 장소였다. 사진을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기도 하고, 줄도 길어 꽤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런데 마침 함께 오르던 프랑스 가족이 우리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나섰다. 그 가족도 다섯 살 아이와 함께 이 험난한 코스를 완주한 대단한 가족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한 장의 소중한 가족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사진만 보면 ‘세상에 이런 곳이 정말 존재할 수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보면 주변의 거대한 바위산 속에서 트롤의 혀가 오히려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진과 현실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가족이 함께 이 트롤퉁가 트레킹을 해냈다는 사실이었고, 그 성취감은 기대 이상이었다.이번 트레킹은 단순한 트레킹 이상의 의미를 우리에게 남겼다. 트롤퉁가 정상에서 느낀 성취감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넘어, 가족이 함께 걷고 도전함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함께 다독이며 이겨낼 수 있으리라.
오재철과 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을 출간했다. 이후 남편은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아내는 여행기자와 웹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딸과 함께 떠나는 가족 세계 여행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