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과거를 품은 보물창고,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카이로 한복판, 어수선한 도시의 풍경 속에 우뚝 선 고고학 박물관은 이집트의 심장이었다.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수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유물의 향연. 황금빛 마스크를 쓴 투탕카멘의 장례품은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들었고, 잘 보존된 미라 옆을 지날 땐 섬뜩함마저 감돌았다. 고대 상형문자들이 정교하게 새겨진 비석 앞에서 수천 년의 세월을 체감하고자 하니 유물 하나하나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닌, 고대의 생생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향신료와 불빛의 도시, 카릴리 시장의 밤
어둠이 내려앉은 카이로, 낮보다 더 활기찬 밤의 정취가 골목을 가득 채운다. 황금빛 램프들이 벽을 타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그 불빛이 돌바닥을 반사해 시장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향신료 냄새가 콧속을 간질이고, 공예품을 파는 상인들의 외침과 미소는 고요한 밤을 흥겹게 수놓았다. 에너지가 넘치는 상인과 웃으며 티격태격 흥정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낯선 이방인이 아닌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밤을 달리는 시간여행, 카이로-아스완 야간기차
카이로 기차역의 밤은 분주했다. 짐을 가득 실은 여행객들과 이집트 현지인들이 긴 플랫폼을 따라 분주히 움직인다. 기차는 도시의 불빛을 하나 둘 등 뒤로 밀어내며 남쪽을 향해 달렸다. 작고 투박한 이층 침대에 지친 몸을 누이고, 그 안에 달그락거리는 열차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낭만이었다. 차창 밖에는 까만 어둠과 가끔씩 스치는 조그만 마을의 희미한 불빛들, 기차 소리와 이국적인 냄새가 섞인 공기 속에서 깊은 밤이 지나가고 새로운 도시의 아침이 우리를 맞이했다.
태양과 정렬된 기적, 아부심벨 신전
나세르 호수 끝자락, 드넓은 사막 한가운데서 거대한 석상 네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람세스 2세의 위엄이 깃든 아부심벨 신전. 정면에 우뚝 선 파라오의 조각상은 높이만 20미터가 넘었고, 그 거대함에 절로 숨이 멎었다. 더 놀라운 건 그 정교함이었다. 매년 2월과 10월, 해가 떠오르며 신전 내부 깊숙이 람세스 신상에 햇빛이 닿는 그 정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고대 이집트인들의 지혜에 감탄하였다.

홍해 아래 감춰진 천국, 후르가다에서의 스노쿨링
사막을 지나 도착한 후르가다에서는 전혀 다른 이집트가 펼쳐졌다. 홍해의 잔잔한 파도 아래, 형형색색의 산호와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 무중력의 공간에서의 고요함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처음 보는 물고기들을 구경하며 그렇게 바다속을 누비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일으킨 그 역사적 현장 속에 내가 들어와 헤엄치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영원을 꿈꾸다,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이집트 여행의 마지막 장면은 이집트하면 떠오르는 대망의 피라미드로 장식했다. 사막 위에 놓인 거대한 석조물들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위엄을 품고 있었다. 천년의 시간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이 건축물 앞에 서니 인간의 의지란 무엇인가 되묻게 된다. 스핑크스는 피라미드 너머로 도시를 응시한 채 묵묵히 서 있었고, 그 눈빛은 무언가를 간직한 듯 신비로웠다.
이집트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문명과 나 사이의 조우,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시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 감동은 조금도 바래지 않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여정, 그것이 바로 이집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