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해안일주도로가 55년 만에 완공됐다는 기사를 접하고, ‘당장 울릉도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지 어느새 2년이 흘렀다. ‘가 봐야지, 꼭 한 번 가 봐야지···.’ 하면서도 3주 이상의 긴 시간을 내려니 파트너(남편)와의 일정 맞추기부터 날씨 고려까지···. 울릉도 한번 방문하기가 이렇게 어렵냐는 나의 푸념에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말했다. 울릉도 여행은 2박 3일이면 충분하다고. 뭔 3주 씩이나 시간을 빼려 하느냐고···.


2021년 7월 7일, 캠핑카를 싣고 울릉도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8월 현재, 한 달이 넘게 캠핑카 바퀴를 굴리며 울릉도 곳곳을 누비고 있으나 아직, 아직 울릉도를 온전히 만끽했다 말할 수 없다. 충분치 않다.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산과 바다, 사람 냄새가 나는 울릉도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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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와 육지를 잇는 배는 강릉, 후포, 포항에서 탈 수 있다. 소요 시간으로 따지면 후포에서 울릉 구간이 2시간 30분으로 가장 짧고, 포항에서 울릉 구간이 3시간 10분~20분으로 가장 길지만 우리는 자동차(캠핑카)를 함께 보내기 위해 포항으로 향했다(자차 운송은 포항에서만 가능).


포항으로 가는 길,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비가 내렸다. 올해는 장마가 늦다 했고, 그 늦은 장마의 시작을 알릴 즈음이었다. 장마철에 울릉도를 가다니! 일정을 좀 늦추는 게 어떻겠냐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울릉도행을 강행했다. 어쨌든 출발! 회색 하늘 아래 검푸른 망망대해, 넘실대는 파도를 타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향할수록 빗줄기가 점차 잦아든다. 다행히 바람은 심하지 않은 덕에 어른은 물론 아이도 뱃멀미 하나 없이 순항할 수 있었고, 여행 전 기우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출발을 제외하곤 한달째 ‘매우 맑음’의 연속이니까.


울릉도의 여객항은 크게 도동, 사동, 저동에 있는데 포항에서 2시 배로 출발한 우리는 엘도라도 호를 타고 도동에 입항했다(선박(대저해운) 문의 1899-8114). 현재는 울릉도 곳곳에 방파제가 잘 설치되어 있지만 본격적인 울릉도 개척이 시작된 19세기에서 20세기 초는 물론이거니와 그 이전 역사에서는 엄청난 해풍과 바위 밖에 없는 해변에 큰 배가 접안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그중 도동은 자연 형성된 만이 있어 포구 역할을 하여 파도와 바람의 영향을 덜 받아 대형 선박의 접안이 그나마 용이했던 곳이다. 덕분에 도동항 양 옆으로 높게 솟아오른 기암절벽이 울릉도 여행을 시작부터 웅장하게 만들어주었다. 마치 블록버스터급 대서사시의 오프닝 장면을 연상케 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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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어스름 희뿌연 해무 사이로 숨막힐 듯 웅장한 절벽이 어른거린다. 미지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듯 빨간 엘도라도호가 도동항에 다다르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언제 폭우가 내렸냐는 듯 잔잔한 수면 위로 햇살이 반짝거린다. 바다 바닥이 훤히 보여 물고기를 종류별로 하나하나 셀 수 있을 정도다. 더군다나 이곳이 커다란 배들이 들락거리는 항구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울릉도의 청정 바다는 그저 놀랍다.


여행작가로서 울릉도를 떠올리자면, 이곳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대해 널리 퍼트려 알리고 싶은 마음 굴뚝 같으나 개인적으로는 두고두고 나만 알고 싶은, 나만의 아지트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앞서 말했듯 55년만에 44.55km를 잇는 울릉일주도로가 개통됐다.


내수전부터 석포까지 도로를 놓는 데만 8년이 걸렸다. 마침내 막혀 있던 울릉도 동쪽까지 모두 뚫려 울릉도 남동쪽인 저동에서 천혜의 자연 경관이 즐비한 천부까지 20분이면 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25년이면 울릉도에 공항이 생길 예정이다. 그러므로 지금, 지금이 울릉도를 여행하기 최적기인 셈이다. (제발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난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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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눈에 띄는 커다랗고 까만 우리 캠핑카 덕분에, 울릉도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요샛말로 ‘인싸’가 되었다. 캠핑카를 보고 먼저 관심을 보이는 동네 주민도 있고, 아무개에게 들었다며 “서울서 오신 작가 부부아인교?”라며 아는 체를 하기도 한다. 아무리 짧은 대화가 오고 가더라도 내 양손엔 명이 나물이며 수박, 생선, 그것도 아니면 아이를 위한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손에 들리곤 한다. 냉장고가 비워질만 하면 채워지고, 빌 만 하면 채워지는 동네 인심들. 어느 날엔 한 손엔 프라이팬, 한 손엔 직접 강판에 갈아왔다며 돗자리를 펴놓고 여름밤이 깊어지도록 감자부침개를 부쳐주시기도 했고···.


누가 울릉도를 작다 했는가? 누가 2박 3일이면 충분하다 했던가? 보통은 시계 방향 또는 반시계 방향 중 어느 방향으로 돌아야 풍경이 더 아름다운지에 관해 조언을 해줄 수가 있는데, 울릉도 일주도로는 반드시 두 방향을 모두 돌아봐야 한다. 울릉일주도로를 따라 보게 되는 삼선암, 거북바위, 코끼리바위 등은 빛과 시간, 방향과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다르게 보이기 때문. 어제 다녀온 곳도 오늘 보니 새롭다. 나는 이 놀랍고 경이로운 울릉도를 떠날 날을 기약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울릉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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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철과 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등을 출간했다. 이후 남편은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아내는 여행 기자와 웹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캠핑카로 전국을 돌며, 유튜브 라니라니tube 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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