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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내게 맡기시라! 모마The Museum of Modern Art (뉴욕 현대 미술관) 갔었어?
안 갔다 왔지? 뉴욕에 왔으면 모마는 한 번 가 줘야지!”


414일간의 부부 세계여행 중 뉴욕에서 지낼 때의 일이다. 유학을 오래 했던 남편은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과 며칠째 회포를 푸느라 나 홀로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도착한 지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의기양양하게 저렇게 외친 것이다. 


그의 제안대로,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모마 미술관은 뉴욕이라는 도시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마티스, 모네, 달리, 반 고흐, 앤디 워홀 등 미술에 조예가 얕은 나 같은 사람들도 잘 아는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과 비록 작가 이름 같은 건 잘 몰라도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대형 미디어 아트, 쉬어가는 의자까지 예술로 승화시킨 일상 속 예술을 한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모마 미술관을 둘러본 후 그가 나를 이끌고 간 곳은 첼시 마켓Chelsea Market. 며칠 전 혼자 와봤던 곳이었다.


“나 여기 와봤는데?
“아니, 여기서 점심 먹고 우리는 하이라인 파크HighLine Park로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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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첼시 마켓에 들러 점심을 먹은 후 남편의 손에 이끌려 하이라인 파크로 향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경의선 숲길이나 서울로 7017 같이 옛 철길이나 고가 도로가 새롭게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여행 당시엔 사실 듣도 보도 못한 파격적인 실험 공간이었다. 빌딩과 빌딩 사이를 가로지르는 공중 정원. 그야말로 빌딩숲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지만, 남편과 손을 잡고 함께 걷는 하이라인 파크는 그 단어가 주는 어감보다 훨씬 더 로맨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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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마켓에서 시작된 우리의 산책은 뉴욕의 중심,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로 이어졌다. 영화 속에서 보던 것처럼 한 팔에 암밴드를 두르고 한 갈래로 질끈 묶은 머리를 달랑거리며 조깅을 하는 언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한낮이었는데도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어린 아이들은 푸른 센트럴 파크를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어떤 이들은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어떤 이들은 돗자리를 펴고 누워 책을 보거나 연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도 슬그머니 풀밭에 앉았다. 오리배가 저렇게나 낭만적이었던가? 호수 위 한가로이 떠 있는 오리배들마저도 ‘내가 바로 뉴욕의 오리배요.’ 하고 으쓱거리는 것 같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뉴욕의 중심부가 이리도 평화롭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는데, 남편이 시계를 쳐다보더니 외쳤다. 


“가자,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즐기러!”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우린 타임스퀘어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라이온 킹 전용 극장. 며칠 전부터 공연이라도 볼까 혼잣말을 하며 고민하던 것을 들은 모양이었다. 영어가 서툰 내가 보기에 안성맞춤인 공연. 정말이지, 명성 그대로 공연을 보는 내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화려하고 유쾌했고, 생동감이 넘쳤다. 뮤지컬 관람을 마친 후 남편이 추천하는 야경 명소에서 그의 손을 잡고, 반짝이는 뉴욕을 눈에 담았다. 뉴욕에 머무는 동안 있었던, 혼자 또 함께였던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났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세상 그 어느 곳과도 비교 불가한 도시, 사람과 자연, 문화가 한데 뒤섞인 도시, 뉴욕!

남편이 선물한 오늘은 ‘한 편의 영화 같이 완벽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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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철과 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을 출간했다. 이후 남편은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아내는 여행 기자와 웹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6살 딸과 함께 두 번째 세계 여행을 준비하던 중 팬데믹으로 인해 취소. 현재 캠핑카로 전국을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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