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야기는 몇 년 전 쿠바에 머무는 동안 필자의 작은 깨달음에 관하여다. 쿠바에 입국하여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내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하나 있었다. 바로 쿠바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 말이다. 그들에게선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여유가 느껴졌다. 사실 쿠바는 여행자라면 꽤나 불편함을 느낄 만큼 시설이나 물질적인 면에서 부족한 나라다. 어찌 보면 그들의 삶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고단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들의 얼굴에는 항상 맑은 웃음이 담겨 있었다. 이방인들에게 환히 웃음을 보이고, 순간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쿠바인들. ‘어떻게 가능한 걸까? 단순히 여행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일까?’ 하는 의구심이 내 안에 가득했다.


아바나에서 버스로 16시간이나 떨어진 산티아고 데 쿠바로 향한 건 순전히 아내의 바람 때문이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 대한 환상으로 쿠바를 찾은 아내에게 옛 수도이자 쿠바 음악의 발상지인 산티아고 데 쿠바는 처음부터 최고의 여행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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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따나메라~ 과히라 관따나메라~’ 어디선가 들려오는익숙한 멜로디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거리의 햇살을 온전히 받아 들이는 오픈형 바. 그 음악이 귓가에 선하다. 음악에 이끌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몸짓으로 한껏 흥을 표출하고 있었다. 자신 보다 덩치가 큰 북을 치는 아이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여행자에게 이보다 더 뜨거운 환영 인사가 있을까?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아내도 어느새 무리에 섞여 함께 어깨를 들썩인다.


기타 연주자와 첼로 연주자 그리고 두 손으로 마라카스를 쉴 새 없이 흔들어대는 이들이 오늘 이 오픈 바의 세션이다. 작은 바를 가득 채운 연주에 관객들은 환호로 화답했다. 그 순간 여행객 중 한 명이 자신의 가방에서 바이올린을 꺼내들고 무대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연주자들과 여행객이 즉석에서 음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기타가 먼저 음을 던지면 바이올린이 받아 연주하고, 그 음악에 마라카스 연주자의 감성이 덧칠해졌다. 서로가 자신의 악기를 들고 대화를 나누었다. 연주자들과 여행객이 만들어낸 거대한 그림에 가슴 한구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너무 벅찼던 걸까? 난 아내의 손을 잡아 테이블 사이의 비좁은 공간으로 이끌었다. 프로 춤꾼처럼 멋스럽지 않으면 어떠하리. 그저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동작이면 충분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여행객들과 현지인들은 낯선 동양인들의 몸짓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만큼 배려가 깊으니까. 덕분에 창피스러움을 잊은 채 몸이 이끄는 대로 감정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며 우리만의 율동을 만들어냈다. 평소 같으면 이것저것 재느라 주변 눈치만 봤을 나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온전히 순간을 즐기며 한바탕 신나게 땀을 흘렸다(내게는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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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시원한 바닷바람이 그리운 시간. 우리는 카리브해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지어진 모로 요새로 향했다. 절벽에 가까스로 지어진 모로 요새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 시간만큼의 바닷바람과 햇볕으로 채색된 신비로운 요새는 어느새 황금빛 자태로 한없이 빛나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난간에 기대어 이 세상의 마지막을 맞이하듯 바다 저편으로 저물고 있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가벼워진 바닷 바람이 나에게 속삭였다. ‘무엇을 걱정하나요? 일어나세요. 그리고 나를 느껴보세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저무는 태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사실을.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무언가를 완벽히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가지려 했고, 다른 이들은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행복감으로 물들어있던 그 순간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지? 오랜 여행으로 때가 묻은 커다란 배낭과 이 순간의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행 속에서 애써 배우려 하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 남은 한 가지 이야기.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구나! 쿠바인들이 꾸밈없이 웃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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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철과 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을 출간했다. 이후 남편은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아내는 여행 기자와 웹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6살 딸과 함께 두 번째 세계 여행을 준비하던 중 팬데믹으로 인해 취소. 현재 캠핑카로 전국을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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