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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여덟과 여덟, 정확히 60살 차이가 나는 조부모와 손녀 그리고 우리 부부는 함께 36일간의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을 다녀왔다. 3대가 함께 떠난 캠핑카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고,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각 한 달씩 서유럽과 동유럽을 여행했었다. 이후 4년 만에 3대가 다시 뭉쳤다! 가족은 뉴질랜드의 거대한 대자연을 쉼 없이 달렸고, 매일 밤 캠핑카 창문으로 떨어지는 은하수를 마주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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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라인 타고 태고의 숲을 날다


북섬에 있는 로토루아에 들어선 건 아이의 8번째 생일날이었다. 축하와 사랑의 마음을 그저 물질로 전하기보단 새로운 경험과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며칠 전, 로토루아의 캐노피 집라인 투어를 예약해 두었다.


업체에서 운영하는 두 개의 프로그램 중 우리는 온 가족이 참여 가능한 ‘오리지널 캐노피 투어’를 택했다. 우리를 포함하여 친구팀과 모녀팀이 합류하여 총 10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탐험대가 꾸려졌다. 영어로 진행된 탓에 부모님도, 아이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위트 넘치고 프로페셔널한 가이드 ‘빈센트’ 덕분에 투어는 순조롭게 진행됐다(포켓몬스터 양말을 신고 있는 아이를 보더니 자기도 포켓몬스터를 좋아한다며, 피카츄 양말을 신고 있음을 증거로 보여줬다.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순간!).


우리가 택한 오리지널 캐노피 투어는 6개의 집라인과 2개의 흔들 다리를 넘나들며 3시간여 동안 뉴질랜드의 태곳적 숲 곳곳을 탐험하는 프로그램이다. 가장 긴 집라인의 길이는 220m나 되고, 높이는 무려 22m에 달한다. 평소 늘 올려봐야만 했던 나무들을 22m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그간 바라보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 몸이 작아지는 마법의 숲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숲의 정령이 되어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 같은 착각도 인다.


탐험 중 어디선가 작고 예쁜 투이 새가 대원들 사이로 날아들었다. 뉴질랜드 고유종인 ‘투이’는 참새목으로 그 크기가 정말 참새처럼 작다. 수컷의 체중은 약 100g, 암컷의 몸집은 그보다 작은 75g 정도이다. 로토루아의 캐노피 투어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집라인을 타고 즐기는 오락 체험을 넘어 숲을 보존하고 지킴으로써 우리의 삶을 지키고 가꿔나가는 법을 함께 익힌다는 점 때문이다. 과거 식민지화로 인해 서식지 파괴, 침입종 또는 포식자가 유입되면서 투이의 개체 수가 상당히 감소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집라인 투어를 진행함과 동시에 10년 넘게 꾸준히 천적을 퇴치하는 운동을 진행 중이며, 그리하여 현재 투이의 개체 수가 성공적으로 회복되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내 아이의 작은 어깨 위 더 작은 투이의 모습에서 커다란 행복이 느껴졌다.


‘처음’이라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온몸을 내던져 즐겨본 집라인 체험이 어땠냐는 물음에 동시에 엄지 척으로 대답하는 아이와 부모님···.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68년 평생의 첫 경험을 안겨드린 것이다.


‘그래, 이 맛에 또 가족 여행을 떠나는 거지!.’


*캐노피 투어즈 예약 홈페이지 : www.canopytours.co.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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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폴리네시안 스파에 빠지다


뉴질랜드는 지각을 이루는 두 암판이 만나는 곳에 있어 현재도 지열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그중에서도 간헐천, 온천 등 다채로운 지열 관광 상품이 발달한 북섬의 로토루아가 유명한데, 이곳에선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지구의 뜨거운 활동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도시 구석구석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며, 심지어 공원에서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유황천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게 바로 그 증거다.


집라인 체험을 마친 후 차로 10분 거리의 폴리네시안 스파로 향했다. 유서 깊은 폴리네시안 스파는 세계적인 여행 전문지 ‘콘드 내스트 트래블러’에서 수차례에 걸쳐 ‘세계 10대 지열 온천’ 중 하나로 선정한 곳이며, 이곳의 물에 유황 성분과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여 류머티즘이나 관절염에 효능이 있다 알려져 있다. 하여 초창기에는 치료의 목적이 컸지만 현재는 명실상부 뉴질랜드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캠핑카 여행을 하며 쌓인 여독을 풀기에 이 보다 좋은 선택지가 또 있을까?


야외 온천이라 가족 모두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후 물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이내 한국인들에게 특히나 매우 사랑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흔히 외국 기준의 온천은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다소 미지근하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폴리네시안 스파의 가장 높은 물의 온도는 42·℃ 정도로 한국인이 느끼기에도 뜨거울 정도였다. 게다가 두눈에 가득 담기는 로토루아 호수의 그 청량한 풍경은 또 어떻고!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는, 몸도 마음도 정화되는 행복한 시간이 흘러 흘렀다.


*폴리네시안 스파 홈페이지 : www.polynesianspa.co.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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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파-투, 뉴질랜드 원주민의 삶 속으로


로토루아에선 갈색 피부에 몸집이 큰 사람들이 유독 많이 보인다. 바로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이다. 로토루아에 마오리 빌리지가 있기 때문인데, 여행객은 테-파-투 투어를 통해 빌리지 방문 체험이 가능하다. 원주민, 그들의 삶 속으로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해질 무렵, 마오리 빌리지로 가는 셔틀에 탑승했다. 버스는 미끄러지듯 로토루아를 빠져나왔다. 창 너머 저무는 붉은 해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음율을 담긴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음원을 틀은 건가 싶었지만 오늘의 빌리지 가이드가 직접 부른 목소리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귀가 아닌, 마치 영혼에서 영혼으로 이어져 들리는 듯 느껴졌기 때문.


가이드의 노래는 마법의 주문 같았다. 노래가 멈춘 곳에 원주민 마을, 그들의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생겨났다. 주변은 깜깜했고, 붉은 모닥불만이 활활 타올랐다. 외부인을 위한 환영식이 시작됐고, 이후 방문객이 함께 참여하며 마오리 문화와 놀이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마오리 방문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하카’ 쇼가 시작됐다. 여러 명의 마오리족들이 혀를 쑥 내밀며 위협적인 표정과 함께 발을 굴리고, 허벅지와 가슴을 치며 우렁찬 구호를 외친다. 이는 전투 전 사기 고양을 위해 했던 마오리족의 전통 춤이자 의식인데, 그 한과 역사가 그들의 몸집과 외침으로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하카를 보고, 마오리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사 시간이 이어지는 등 늦은 밤까지 마오리 빌리지에서의 체험이 이어졌다.


마오리 빌리지에서의 체험을 마치고 로토루아로 돌아오는 길···, 가이드의 낮고 창연한 목소리와 눈부신 로토루아 시내의 불빛이 교차되며 마오리 빌리지에서의 시간이 어느새 꿈결처럼 느껴졌다. 생생하고 찬연한 신비로운 꿈····.


*테파투 마오리 빌리지 체험 홈페이지:te-pa-t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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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철과 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을 출간했다. 이후 남편은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아내는 여행 기자와 웹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딸과 함께 떠나는 가족 세계 여행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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