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그리고 3살 아이와 함께 떠난 열흘 간의 캐나다 여행이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리 속 깊이 박힌 어느 하루에 관한 이야기. 여행의 마지막 날, 호텔을 나서는 입구부터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그리곤 카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 파크의 매표소에 도착하자마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휴, 마지막까지 하늘은 우릴 도와주지 않는구나!’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입구로 들어섰다. 하지만 ‘반전’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후두둑 빗방울들이 떨어진 자리는 수채 물감으로 막 채색을 끝낸 듯 선명한, 말간 자연의 색으로 촉촉히 젖어 있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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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숲속 산책 혹은 탐험에 들어가기에 앞서, 어마어마한 포스를 내뿜는 흔들 다리 앞에 다다른 우리 가족은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높이 70m, 쉽게 설명하자면 25층 아파트의 꼭대기에서 꼭대기를 잇는 외줄을 건너려면 누구라도 잠시 멈춰 심호흡을 하게 되지 않을까. 아버지 뒤에 어머니, 어머니 뒤엔 아이를 품에 안은 나, 내 뒤에는 남편이 줄을 섰다. 각자 앞사람의 뒤통수만 바라보며 잰걸음으로 흔들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지만 난 차마 아래를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세찬 강물 소리만으로도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우리 날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길이 140m,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는 다리 위에서 조금씩 적응이 되어갈 때쯤 남편이 외친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두려움은 옅어지고 조금씩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위아래로 출렁이는 다리는 마치 우리가 하늘 가운데 두리둥실 떠 있는 느낌마저 들게 해준다. 아찔한 절벽과 몇 백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상록수가 만들어내는 카필라노 협곡의 장관도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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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카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를 검색해보면 흔들 다리 사진이 가장 많이 노출되지만, 사실 이곳의 매력은 다리를 건넌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산책과 탐험 그 사이 어디쯤이라 할 이곳만의 독특한 매력이. 개인적으로 카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하늘을 찌를 듯 키가 큰 나무의 중반쯤에 올라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걸을 수 있는 트리탑 어드벤쳐Treetop Adventure다. 짙은 녹색으로 무르익은 나무 사이를 다람쥐, 아니 피터팬처럼 양팔을 벌린 채 요리조리 장난스럽게 통과해본다. 아란이는 물론이고, 부모님 또한 연신 감탄을 자아내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에 아침까지의 침울했던 기분은 저 멀리 날아가고 역시 캐나다로 여행오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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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탑에서 내려와 딸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연못 위 징검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때론 부드러운 흙길도 밟으며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는 사이 시나브로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느껴진다. 막 채색을 끝낸 수채화 속 녹색 나무들이 반쯤 갠,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햇살을 받아 더욱 빛이 난다. 까르르거리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퍼지는 이 순간이, 다정하게 셀카를 찍으시는 부모님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들리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날이 맑으면 맑아서, 날이 흐리면 흐려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더욱더 달려가고 싶어지는 그곳, 카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 파크.요즘 유독 생각나는 여행지. 한아름 물기를 머금은 이슬들이 모여 푸른 숲을 더욱 싱그럽고 생기 있게 만들어 주던 곳. 맑으면 맑아서, 흐리면 흐려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더욱더 달려가고 싶어지는 그곳, 카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 파크Capilano Suspension Bridge Park다.



본문 속 여행지 ‘캐나다, 카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 파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노스 밴쿠버를 흐르는 카필라노 강을 건널 수 있는 현수교(교각과 교각 사이에 철선이나 쇠사슬을 건너 지르고 이 줄에 상판을 매어단 교량). 캐나다 시정부가 의뢰하여 1888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조지 그랜트 맥케이가 최초로 지었고, 이후 1903년 케이블로 교체하였다. 1910년에 사유지가 되었고, 1956년에 완공되었다. 길이 140m, 높이 70m의 서스펜션 브릿지가 가장 유명하며, 나무 사이를 연결해 만든 트리탑 어드벤쳐, 아찔한 협곡 위 유리로 된 산책로인 클리프 워크까지 크게 3가지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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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철과 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을 출간했다.

이후 남편은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아내는 여행 기자와 웹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세상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딸, 란이와 두 번째 세계 여행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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