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  사진 오재철


산굽이를 돌아 마을 어귀로 들어서자 수정처럼 투명한 호수가 가장 먼저 낯선 이를 반겼다. 깎아 세운 듯 세모난 산들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 한쪽엔 마을의 상징인 양 시계 첨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첨탑 앞에는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주었던 아까 그 거울 같이 맑은 호수가 펼쳐져 있고, 일렁이는 호수 속에는 청아한 산들과 평화로운 하늘이 담겨져 있었다. 멋들어진 자연 풍경과 언덕 위 늘비하게 지어진 집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모든 이들이 가슴속에 간직해 온 동화책 속 마을을 재현해 놓은 듯 마냥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운 동화 속 마을의 이름은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 잘츠부르크에서 한 시간 여 떨어져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나 잘츠부르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이지만 우뚝 솟은 알프스를 끼고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푸른 호수를 둔, 그리고 레고 블록으로 쌓아올린 것처럼 아름다운 집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겨울 왕국’의 아렌델 왕국의 모티브가 된 도시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으니 정말 동화(애니메이션) 속 마을을 옮겨다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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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왕국 속 아렌델 왕국을 떠올리며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독 창문 사이로 내걸린 알록달록한 꽃들이 비현실적으로 탐스럽고 싱싱해 보였다. 무진장 잘 만들어진 조화가 아닌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모두 촉촉한 생기가 넘치는 생화가 아닌가! 난 너무나 의아해서 바로 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로 달려가 다짜고짜 주인에게 물어 보았다.


“이 마을 꽃들은 시들지도 않고, 언제나 저런 모습인가요?”

“세상에 그런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저녁으로 하루 2,3시간씩은 손수 관리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바로 시들어버려요. 매일 물을 주고 어루만지며 꽃과 대화하고, 꽃들의 마음을 알아줘야 해요.”

“아!”

짧은 깨달음. 그들이 열과 성을 다해 마을의 꽃을 가꾸는 건 그리고 그 꽃들에 의해 이토록 아름다운 동화 속 마을이 꾸준히 유지될 수 있는 건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을 사랑하고, 내 꽃을 사랑하고,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는 만족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할슈타트Hallstatt의 자연 환경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개발’이라는 취지 아래 ‘효율’이라는 잣대를 들고 오로지 현세대만을 위한 근시안적 ‘안목’이라는 명목으로 난도질하지 않았을까? 이곳의 사람들이 천혜의 자연을 받았음을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대한 자세를 먼저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기간 여행을 하다 보면 신이 내린 선물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래서 멋진 자연 앞에선 늘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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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작은 광장에 앉아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들에게는 서울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것’이 있었다. 바로 평화로운 이 마을과 닮아 있는 온화한 미소, 아름다운 자연과 융화를 이루며 오랫동안 동화 마을을 지켜온 이들에게 어울리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고 공존하며 걸어온 그들의 삶이 녹아든 할슈타트가 동화 마을이라 불리는 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리라!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할슈타트, 오스트리아의 잘츠캄머구트 지역에 있는 호수 이름이다. 비엔나와 잘츠부르크 사이에 위치한 잘츠캄머구트는 알프스의 산자락과 70여 개의 호수를 품은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다. 장크트 길겐, 장크트 볼프강, 볼프강 호수 등이 이 지역에 속해있으며, 그중에서도 할슈타트는 ‘잘츠캄머구트의 진주’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만큼 아름답다. 1997년에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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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철, 정민아 부부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을 출간했다. 이후 남편은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아내는 여행 기자와 웹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세상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딸, 란이와 두 번째 세계 여행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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