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 보면 묘하게 정이 가는 곳이 있다. 떠나는 발걸음이 차마 떼어지지 않는 곳. 아니, 여건만 된다면 남은 생을 몽땅 보내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지나쳤던 수많은 도시 중에 특히 내 온 마음을 빼앗아 갔던 유럽의 도시가 있다. 돌아가야 할 조국이 있으면서도 자꾸만 주저앉고 싶었던 곳,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다. 그곳이 매혹적이었던 다섯 가지 이유를 밝힌다.


첫째, 찬란한 문화유산 속에 느긋한 여유와 멋스러운 낭만이 깃들어 있다. 유럽의 어느 도시엔들 문화유산이 없겠냐만은 비엔나만 한 곳이 있을까? 합스부르크 왕가의 숨결이 배어 있는 건물 사이사이로 운치 있는 선율이 번진다. 낡은 창가엔 밝은 햇살이 내리쬐고, 달콤 쌉싸래한 커피 한 잔과 클래식한 음악에 하루 종일 젖어 있어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곳. 낭만의 도시라는 수식어는 비엔나에 가장 적합한 별칭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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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온화한 이웃들이 살고 있다.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졌던 나라, 독일과 함께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나라. 오스트리아가 가지고 있는 역사의 장면들이다. 때문에 난 그들의 민족성이 차갑고 강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만나 본 그들이 내게 건네준 건 부드러운 미소와 따뜻한 친절이었다. 비엔나 시내 한복판에서 타이어 펑크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고 서 있는 우리에게 손 내밀어 주던 사람들. 당황한 우리들을 위해 먼저 발 벗고 나서 주었던 시민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경험했던 그들의 부드러운 미소와 따뜻한 친절은 진짜였다. 이런 이웃이 있다면 함께 하기에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셋째,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다. 부담 없는 물가. 유럽 여행에서 가장 겁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물가다. 다른 대륙에 비해 여행 경비가 가장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유럽의 한가운데에 있는 비엔나의 물가는 예상 외로 착한 편이다. 사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마트에서 가격표에 연연하지 않고 장을 볼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가 바로 비엔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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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알프스의 대자연이 있다. 비엔나에서 조금만 차를 몰고 나가도 알프스의 대자연을 만날 수 있다. 천연 암반수로 이루어졌을 것 같은 투명한 호수와 깎아지른 듯 우뚝 솟아 있는 절벽 같은 산, 그 사이를 흐르는 신선한 공기도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주말이면 늘 영화 속 풍경 같은 교외로 나들이를 갈 수 있는 곳,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아름다운 영화 속 배경이 비엔나에서는 실존한다. 이것이 내가 비엔나를 사랑하는 네 번째 이유다.


다섯째, 아름다운 나만의 추억이 서려 있다. 비엔나가 유럽의 그 어느 도시보다 각별했던 이유는 수민이라는 고등학교 친구 때문이다. 10개월을 넘게 집시처럼 떠돌아다녔던 내게 따스한 집 밥을 흔쾌히 내주었던 친구. 그 덕에 비엔나는 낯선 타국의 도시가 아니라 옛 친구가 살고 있는 내 고향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친구 한 명쯤 살고 있는 도시에서 사는 게 덜 힘들고 덜 외롭지 않을까?


아, 나의 비엔나여! 다음에 갈 때는 한국 생활 정리하고 갈 테니 기다리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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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철과 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을 출간했다. 이후 남편은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아내는 여행기자와 웹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딸과 함께 떠나는 가족 세계 여행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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