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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땐 슬프다고, 기쁠 땐 기쁘다고, 또 힘들 땐 힘들다고 표현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된 건 어릴 적 학교에서 울면서 돌아온 내게 “사람 많은 데서 우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라고 타이른 부모님 탓일까,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회생활에서 네 마음을 곧이곧대로 들키는 건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야.” 라고 조언한 선배 탓일까? 어느 샌가 나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단 아닌 척, 괜찮은 척 숨기는 데에 더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몸에 밴 오랜 타성은 여행 중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건 없었다.


알람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 그라나다에 도착했을 때였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 틈에 끼어 나 역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감탄하는 척했지만, 실은 700여 년의 세월도 거뜬히 녹여낼 듯한 7월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을 찾아다니느라 바빴을 뿐이었다. 이 유명한 궁전 앞에선 누구라도 감동받아야 하는 게 마땅했기에 난 덥고 힘들기만 할 뿐 어떠한 감동도,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차마 내뱉지 못했다. 무식해 보이지 않으려고, 감정이 메말라 보이지 않으려고 그저 감동받은 ‘척’하며 투어를 마치고 나니 알람브라 궁전은 이미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지고 없었다.


대신 그라나다의 밤, 그 밤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고작 소극장 공연 하나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방식을 완전히 깨트렸기 때문이다. 작열하던 한낮의 붉은 해가 저문 후 우리는 사크로몬테 언덕 허리에 위치한 자그마한 동굴 집으로 향했다. 입장 그리고 착석. 나란히 앉은 양옆 사람과 엉덩이와 엉덩이가 수줍게 닿았고, 앞으로 손을 뻗으면 맞은편 사람과 맞장구라도 칠 수 있을 듯 좁은 공간이었다. 이곳이 바로 수백 년간 떠돌이로 살며 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서글픈 집시들의 정착지이자 오늘 밤 플라멩코 공연이 펼쳐질 무대라 했다. 사실 우리가 가진 가이드북에는 알람브라 궁전에 대한 내용만 잔뜩 실려 있었기 때문에 공연에 대한 지식도, 기대도 전무한 상태였다.



한동안 웅성거리던 관객들의 잡소리가 잦아들자 바일레(춤), 토케(기타 연주), 칸테(노래)로 구성된 집시들의 동굴 플라멩코 공연이 시작됐다. 춤이란 건 흥에 겨워 기분 좋게 추는 행위로만 알고 있던 난 무대 위 좀처럼 웃지 않는 무용수가 무척이나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거기다 세상에서 가장 처량한 기타 연주에 맞춘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 우울한 노래, 나는 그게 노래라기보다 처절한 발악에 가깝다 생각했다. 내가 기대했던 건 이런 공연이 아니었기에 ‘그라나다는 나와는 맞지 않는 도시구나!’ 생각하며 그저 리듬에 맞춰 흥겨운 척 박수나 짝짝짝 치다 돌아갈 요량이었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신기한 감정이 일었다. 뭉클 슬펐다가, 한없이 애달팠다가, 가끔은 억울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짧은 순간 벅찬 희열에 온몸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항상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며 억누르고 숨겨왔기에 이토록 심오한 감정의 변화를 느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들이 내뱉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도, 심연의 표정을 읽을 수도 없었기에 머리로  해석하고 이해한 건 아니었다. 그건 공연자의 뒷목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과 까만 눈동자 깊숙이까지 바라볼 수 있는 작은 동굴 공연장이기에 가능한 ‘공감’이었다. 사는 게 슬프고 힘들었다며 온몸으로 표출하는 집시들의 마음 속 진실된 감정이 아무도 모르게, 나조차도 몰랐던 깊숙이 묻어둔 감정의 무덤을 파헤친 것이리라. 공연자와 함께 춤추고 호흡하며 영혼까지도 빨려 들어갈 듯 뇌쇄 당한 공연이 막바지로 치닫자 더 이상 내 눈과 내 호흡으로는 쫓아갈 수도 없게 빨라지는 격정적인 파소(스텝), 그리고 일순간의 데즈프랑데(격렬하게 춤을 추다가 잠깐 멈춤). 숨 가쁜 정적 속에서 누가 볼까 속으로만 삼켰던 나의 오랜 울음이 탁 터졌나왔다.


남들 앞에선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못한 나였기에 평소 같으면 창피하다고 먼 하늘이라도 바라보며 꾹꾹 눌러 참았을 눈물이 오늘은 나도 모르게 한 방울 뚝 떨어졌다. 더 이상 난 안 그런 척, 괜찮은 척 숨기기는 힘들었다. 마음이 느끼는 대로, 감정이 이끄는 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났다고나 할까?


공연을 보면서 울컥하여 떨군 한 방울의 눈물은 이내 그칠 수 있었지만, 그날의 눈물이 도화선이 되었는지 여행하는 내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행복할 때에도 그렁그렁 삐져나오는 감정의 눈물은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는 내내 좋아도 슬퍼도 표현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묵혀두었던 솔직한 내 마음의 표현이니 괜찮았다. 바보 같아 보여도 프로답지 않아도 사람은 원래 다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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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철과 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을 출간했다. 이후 남편은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아내는 여행 기자와 웹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6살 딸과 함께 두 번째 세계 여행을 준비하던 중 팬데믹으로 인해 취소. 현재 캠핑카로 전국을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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