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가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 부류는 늘 먹던 것, 늘 쓰던 것만 고집하는 반면 다른 한 부류는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매번 신제품을 찾아 집어 든다. 우리, 남편과 난 절대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익숙함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보다는 처음 보는 것,알 수 없는 것,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과 설렘에 더 크게 반응한다. 세계 여행이라는 큰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일상에서는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갈망 때문이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새로웠다. 하지만 여행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조금씩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새 가이드북에만 의존한 채 앞서간 여행자들의 길을 답습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수록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 앞에 선 어린아이의 설렘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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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에 없던, 아니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했던 ‘베나길Benagil’로 향하게 된 것은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반원형의 해식동굴 안에는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동굴 천장의 한가운데에 동그랗게 나 있는 커다란 구멍 사이로 조각난 하늘이 눈부셨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곳, ‘히든비치’라는 이름 그대로 어느 바다 위에 숨겨진 신비로운 동굴 속 해변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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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는 사진 속 그곳이 어딘지 알아내기 위해 검색했지만 이렇다 할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어느 조그마한 단서 하나를 얻었고, 그 다음은 단 한 장의 사진에만 의존한 채 현지인들에게 물어 물어 어렵사리 베나길 근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포르투갈의 작고 작은 해변 마을이었다. 사실 마을이라고 부르기조차 힘든 그냥 작은 해변가, 그곳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미지의 세상으로 가는 입구였다.


드넓은 바다를 끼고 있는 기암절벽 저 안쪽에 자리 잡은 진짜 목적지로 가기 위해 우리는 작은 고무보트에 몸을 실었다. 하얀 모터보트는 흰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와 혼연일체가 돼 거대한 바다로 나아갔고, 우린 한 마리 돌고래가 된 듯이 붉은 해안 절벽 아래를 아슬아슬하게 유영했다.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굳이 거창하게 베나길을 포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느꼈던 그대로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감정을 써 내려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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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파도와 싸우며 십 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에는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사실 마음 한 구석에 ‘설마 실제도 있는 곳이겠어? 약간의 포토샵 작업을 거쳤겠지.’라는 의심이 살짝 있었는데, 사진 속 모습 그대로 실존하는 동굴이라는 게 증명되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 들었다. 동굴 안은 천장에 뚫린 구멍에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은 동굴 안을 밝고 화사한 신비로움으로 가득 채웠다. 베나길을 지상에서 천국으로 오르는 문턱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바로 이 쏟아지는 빛줄기 때문이다. 힘껏 점프하여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저 공간 너머가 진짜 천국이 아닐까 싶을 정도니까. 


우리가 타고 들어온 보트가 되돌아간 후 아무도 없는 공간 속에서 얻은 건 완전한 휴식과 자유. 끊이지 않는 파도 소리는 온몸의 세포를 이완 시켜 주었고, 동굴 안의 따스한 공기는 엄마 의 자궁처럼 편안했다. 비록 보트 주인이 다시 돌아오기로 한 30분 동안이었지만. 빈 모래사장에 대자로 누운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저 구멍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약속했던 30분 후 돌아온 보트를 타고 나오며 동굴 투어를 마치고, 보트 주인이 알려준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탁 트인 세상이 펼쳐졌다. 보트를 타고 절벽을 올려다볼 땐 내가 돌고래가 된 듯했다면, 벼랑 끝에서 내려다보니 드넓은 바다를 여유롭게 날아다니는 한 마리 갈매기가 된 듯 하였다. 포르투갈의 숨은 여행지인 베나길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태초의 자연’. 그랬다. 누구도 밟지 않은 길, 그 이유만으로도 그곳을 걸을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본문 속 소개 여행지인 베나길은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남쪽으로 2시간 30분,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서쪽으로 2시간 30분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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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철과 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을 출간했다. 이후 남편은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아내는 여행 기자와 웹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6살 딸과 함께 두 번째 세계여행을 준비하던 중 팬데믹으로 인해 취소. 현재 캠핑카로 전국을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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