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각광받던 신혼여행지 중 한 곳, 바로 칸쿤Cancun이다. 코로나 시대의 여파로 잠시 주춤했지만 추세로 보아 곧 다시 성행을 이룰 듯 싶다. 하지만 칸쿤을 알아보다가 비싼 가격 때문에 ‘헉’ 하며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칸쿤은 신혼부부들의 환상 여행지가 아니라 리얼, 그러니까 배낭여행자의 현실 여행기에 가깝다.  


칸쿤은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고급 호텔과 리조트들이 해변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소위 호텔존이라 불리며 투어리스트들을 상대로 하는 비싼 관광 지역과 해변가에서 버스를 타고 한 번 더 들어가야 하는, 칸쿤의 일반 주민들이 주로 살고 있는 다운타운 지역이다. 사전 조사를 통해 칸쿤의 이 같은 지역 생리를 익히 잘 알고 있던 필자는 호텔존을 지나쳐 당연한 듯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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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운타운에서 마음에 쏙 드는 숙소(호스텔)를 찾았을 때, 필자의 발에 이상 신호가 생겼음을, 아니 진작에 생긴 이상 신호가 심각한 경보를 울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번 여행지부터 엄지발가락에 자꾸만 물집이 잡히는가 싶은 걸 대수롭지 않게 방치했더니, 물집이 곪고 터지기를 반복하다가 급기야 걸을 수도 없을만큼 발 상태가 심각해진 것이다. 처음엔 약국에서 연고를 사다가 발라보았지만, 차도는 커녕 점점 발이 썩어들어가는 느낌만 심해졌다. 


말도 안통하는 이 곳에서 발가락을 잘라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괜한 상상력을 키우고 키운 후에야 칸쿤의 병원에 들렀다. 어딘가 많이 허술해 보이는 병원이었지만,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아는 백발의 할아버지 의사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장기간 여행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것 같다며 약과 주사를 처방해주며 되도록이면 물이 닿지 않도록 하고, 일주일 정도 매일 병원에 들러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 ‘아! 죽을 병(?)은 아니구나!’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곧바로 드는 생각은… ‘아름다운 칸쿤 바다를 눈 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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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난 하루에 한 번씩 병원만 왔다갔다 할 뿐 꼼짝없이 호스텔에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꾸준히 병원을 다니며 마냥 푹 쉰 지 5일째 되는 날, 웬만큼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발가락 상태가 좋아졌기에 칸쿤 앞바다를 보러 버스를 타고 호텔존으로 향했다. 


그러나 칸쿤 바다를 보러가는 길,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 있으리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못했다. 배낭여행자에게 해변으로 들어가는 길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들었다. 왜냐고? 칸쿤의 백사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변 빽빽히 늘어선 호텔 중 하나의 로비를 통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대부분의 호텔에서는 투숙객에게 저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원색의 팔찌를 채워 준다. 그 호텔 투숙객용 팔찌가 없으면? 나 같은 돈 없는 여행자 나부랭이가 바닷가로 들어서기 위해 로비로 들어서는 순간, 경비원이 어디선가 잡상인(?)을 쫓아내기 위해 달려오기 때문이다. 우린 호텔을 바꿔가며, 경비원의 눈치를 보며 대여섯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칸쿤 바다를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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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들어간 칸쿤의 바다는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눈부셨다. 비록 해변가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도록 가로막은 호텔들은 얄미웠지만 해안선를 따라 지그재그로 늘어선 호텔들과 해안선은 하나의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또한 한낮에는 에메랄드빛, 해질 무렵이면 점점 신비로운 보라색으로 바뀌는 바다색을 바라보며 왜 사람들이 ‘칸쿤, 칸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만약 내가 정신없이 결혼식(결혼식 준비는 정말 진이 빠질만큼 정신없다)을 막 끝내고 신혼여행으로 칸쿤을 왔더라면 세상 이런 낙원은 없었으리라. 하지만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칸쿤은 감히 넘을 수 없는 비싼 상술의 관광 도시였다. 그 상술이 용서될 수 있었던 건 세상 어디에도 없을 카리브해의 보석, 카리브해의 자존심, 칸쿤의 바다가 형언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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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철과 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을 출간했다. 이후 남편은 여행 작가와 사진 작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아내는 여행 기자와 웹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6살 딸과 함께 두 번째 세계여행을 준비하던 중 팬데믹으로 인해 취소. 현재 캠핑카로 전국을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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