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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수 원 
부산대학교
지진방재연구센터 전임연구원
(
firesome@pusan.ac.kr)

   




학부시절 연구실과 교류가 활발하여 우연한 기회에 연구실에서 연구 중인 ‘함안 성산산성의 축조기법에 대한 토목공학적 연구’를 접하게 되면서 연구보조로 참여하게 되었다. 단면 트렌치작업도 하고 다양한 토질실험을 수행하면서 고고학과 토목공학의 콜라보라는 융합연구로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현재 진행형의 토목공학이 아닌 과거 유적지에 대한 재해석을 지반공학적 접근 방법으로 선조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찾아 역사를 조명해 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단순히 연구보조로 참석하였지만, 이후 박사과정 시절 문화재청에서 풍납토성의 축조과정에 대한 공학적 연구의뢰가 있어 참여 연구원으로서 연구를 수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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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함안의 가야리 토성의 축조방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최초로 선임연구원으로 연구에 참여하여 다양한 분석을 수행했던 풍납토성 축조방식에 대한 연구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 이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풍납토성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 사이에 지어진 한성기 백제의 위례성으로 수많은 유물과 유구가 발굴되었다. 사료와 고고학적 분석에 의하면, 풍납토성의 동성벽은 총 네 단계를 거쳐 최종적인 외형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먼저 지정공사를 실시하고(제1단계), 골조를 수직으로 시공한 후 내외벽을 절취하여 경사면을 조정하였다. 이 골조의 경사면에 내벽은 2회, 외벽은 1회의 다짐시공을 하여 초축성벽을 완공하였다(제2단계). 이후 초축성벽의 내벽에만 다짐시공을 하여 성벽의 너비와 높이를 동시에 확장하였으며(제3단계), 다시 내벽에 점토블럭 등을 쌓고 석축시설을 설치하는 등 이전 단계와는 다른 설비와 시공절차를 추가하면서 성벽의 규모를 확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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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적 분석과 토목공학적 조사방법을 통해 성벽의 구조, 규모, 그리고 축조공법 등을 규명하고자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지반조사를 수행하여 성벽의 성토부와 하부 퇴적토의 공학적 특성을 분석하였다. 성토재료의 물성 및 역학실험을 실시하였고, 성벽단면에 대한 컴퓨터 수치해석을 수행하여 성벽 축조과정과 성벽구조의 원형을 복원하였다.


수치해석 모델링을 위해 풍납토성 성벽의 성토범위와 기초지반에 대한 지반조사를 수행하였고, 다짐과정 모사실험으로 축조 당시 다짐에너지의 수준을 조사하였다.


지층은 지표면에서부터 크게 성벽 성토층, 퇴적층인 실트가 섞인 모래층, 모래 자갈층, 풍화암층, 연암층의 순서로 분포하고 있다. 지반조사를 토대로 한 이론적인 지지력 평가에 따르면, 성벽의 기초지반은 1m2 넓이가 60t 규모의 하중을 지지할 수 있으며, 성벽에 의해 증가된 하중은 20t 정도 수준이다. 따라서 성벽 하부의 기초지반(퇴적층 이하)은 10m 이상 높이의 성벽 축조에 따른 하중 증가를 부담할 수 있으며, 부엽공법 등 추가적인 보강설비가 필요 없었던 기초지반으로 판단되었다.


풍납토성의 성토구조에는 주로 실트질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었으며, 현대의 노반재료의 기준으로 본다면 비교적 우수-가능한 상태이고, 노반토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에 보관중인 현장시료에 대해 세립분 함유량 시험을 수행하였다. 사면경사와 높이에 따른 사면안전율의 변화를 분석하여 그 결과를 성벽 외부의 경사와 높이, 그리고 성벽 상단폭 등 성벽외관 복원에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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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성벽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결과를 참조하면서, 본 연구의 목적과 방법인 공학적 분석에 충실하고자 외벽과 내벽의 경사, 그리고 높이에 따른 성벽의 안정성을 사면안정 해석방법 중 하나인 한계평형해석법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컴퓨터 모델링 기법인 수치해석을 위해 유한요소해석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PLAXIS 2D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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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해석 기법을 사용하여 성벽 축조공법과 과정을 모사하고, 성벽 축조 당시의 너비와 높이, 그리고 사면의 경사 등을 공학적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성벽축조에 사용된 흙의 공학적 특성, 성토 두께, 다짐수준, 성토 높이, 성토 순서 등을 모델링하였다. 발굴조사에 의해 고고학적으로 해석한 성토구조의 층서관계와 3단계 축성 과정에 대한 모델링을 진행하였고, 현재는 유실된 사면 상부를 복원하기 위해 최종 성벽 형상에 대한 모델링도 수행하였다.


풍납토성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굴토구간의 남쪽 단면 층서관계에 기초하여 최대한 유사한 형태로 각 층의 모습과 층 다짐 축조과정을 모사하고자 시도했으며, 축조과정의 추정은 고고학분야 전문가의 협의하였으며, 2가지 시나리오를 적용하여 재현해보았다. 수직판축 및 경사절취를 사용한 다단계 성벽축조 방법(시나리오 1)과 현대의 성토공법인 수평 층다짐 기법(시나리오 2)을 수치해석적 방법으로 재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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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축조 당시 성토재료의 밀도와 다짐에너지, 그리고 최적함수비 등을 분석하기 위하여 현대의 표준다짐시험을 실시하였고, 축조시기의 다짐수준을 재현하기 위해 다짐 에너지를 수정한 다짐과정 모사실험을 수행하였다. 표준다짐시험을 통해 얻은 축조재료의 최대 건조단위중량은 17.0kN/m3, 최적함수비는 14%로 나타났고, 상대 다짐도는 84~91%였다. 다짐에너지를 감소시켜 축조시기의 에너지 수준을 재현하려 했던 다짐과정 모사실험에서는 축조재료의 최대 건조단위중량이 14.1kN/m3, 최적함수비는 21%로 나타났고, 상대 다짐도는 101~109%로 100%를 초과하였다. 이 결과에 따르면 당시 사용된 다짐방법의 에너지는 현대의 기계식 다짐공법(표준다짐시험)과 비교해 낮았으며, 상대다짐도가 90% 이하 수준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짐도가 낮으므로 현대의 사면 경사도에 비해 완만한 사면경사 축조만이 가능했을 것이다.


시나리오 1 축조과정은 다단계 축조과정을 재현하고 있으며, 수치해석 결과에 따르면 성벽이 안전한 수준 이내의 침하와 변위, 그리고 안전율을 보였다. 따라서 시나리오 1은 고고학적인 증거와 공학적인 축조과정의 재현을 검토했을 때, 충분한 개연성(probable)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현대식 성토기법을 적용한 시나리오 2는 우수 등의 배수를 위해 고려하는 최소한의 성토 표면 경사 이외에는 전면에 걸쳐 수평으로 층 다짐 시공을 한다. 시나리오 2는 고고학적 해석을 전혀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지만, 현대공학의 관점에서 경제적이면서도 기술적으로도 수월한 축조 방법이다.


성벽을 모두 한 번에 축조하지 않고 오랜 기간 동안에 단계적으로 축조한 이유는 인력 및 물자 동원력의 한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공학적 분석으로는 초기에 낮게 성벽을 쌓은 후, 성벽 아랫너비를 확대해 가면서 사면이 안정된 성벽의 형태로 높게 증축해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성벽의 원형복원에는 고고학적인 자료와 해석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하였다. 또한 사면이 붕괴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높이 쌓으려 했을 것으로 추정하였으며, 성벽 상단의 너비보다는 높이를 최대한 확장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상과 같은 복원기준에 기초하여, 현재 원형을 유지하는 부분의 사면형태와 경사는 그대로 살리고, 유실된 상부사면의 형태를 복원하기 위해 수치해석과 한계평형해석법을 수행하여 전체적으로 복원하였다. 그 결과, 안전율 1.0 이상의 성벽높이는 14.3m으로 추정되었다.


현재의 공학적 설계 기준으로 과거의 축조방식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어려우나 축조방식, 축조위치, 축조형상, 성토재료, 성토재료의 성질, 다짐방식, 그리고 시공단계 등 과거 선조들이 성을 축조하는 데 있어 공학적 지식이 상당히 높았음을 연구를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현재 과학과 공학기술의 발달로 거대한 구조물들이 세워지고 있는데, 미래에는 우리 후손들이 어떠한 토목구조물을 만들게 될지 또한 현재 우리의 토목공학에 대한 평가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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