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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범 식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
(hbs6700@naver.com)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21.09.23)을 기준으로 정확히 2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모교 대학원에서 연구와 취업준비를 병행하고 있었다. 2020년 8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약 1년간 박사후연구원으로 대학원 생활을 하던 중 취업의 기회가 찾아왔고, 그동안 대학원에서 배우고 쌓아왔던 역량을 잘 발휘한 덕분에 꿈꾸던 직장으로의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아직도 취업에 성공한 것이 꿈만 같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회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문뜩 학교에서의 생활이 그리워 질 때가 있다. 학문적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교수님 및 연구실 선후배님들과 함께 고민하고,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고 실험과 해석을 수행했던 과정들이 그 당시에는 힘들고 고된 과정이었지만 돌아보니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글을 통해 나의 대학원 생활을 돌아보고, 특별하지는 않지만 내가 대학원 생활을 하며 겪었던 경험과 그 과정에서 느꼈던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나의 대학원 생활은 2013년, 학부 4학년부터 시작되었다. 취업이 나와 상관없는 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학부 4학년을 앞두고 동기들과 만나게 되면 취업과 관련된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 또한 대학 졸업 후 진로에 대해 현실적으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진로 중 어느 진로가 나에게 가장 잘 맞고,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명확하게 방향이 설정되기 보다는 더욱 혼란스러워 졌고, 내가 지금 한 선택이 앞으로 나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과 부족한 나 자신을 알게 되어 취업에 대한 두려움까지 생겼었다. 결국 대학을 마치고 바로 사회에 진출하기 보다는 전공에 대한 지식을 더 쌓고, 자신감을 회복하기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평소 토목공학의 다양한 과목들 중 토질역학만큼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조완제 교수님을 무작정 찾아뵈어 진학관련 상담을 하였고 감사하게도 제자로 받아주셔서 학-석사 연계과정으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원 진학 후 가장 처음으로 수행했던 프로젝트가 나의 대학원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처음으로 수행했던 프로젝트는 동절기 지반재료의 다짐 성능 평가와 관련된 연구였고, 주 연구 내용은 다양한 종류의 지반재료를 사용하여 영하 온도에서 다짐시험을 수행하고 온도와 세립분 함유량에 따른 지반재료의 다짐특성을 파악하는 연구였다. 다짐이라는 비교적 쉬운 연구주제였지만, 시험케이스가 많고 시험조건의 설정이 까다로워 연구 진행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전체 시험을 영하의 온도에서 진행하여야 했기 때문에 대형 동결 챔버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으로 한 달간 출장을 다니며 시험을 수행하여야 했으며, 원하는 결과를 획득하기 위해 수백회의 다짐시험을 수행하여야 했다. 대학원 진학 후 처음으로 하는 연구수행이 미숙하기도 하였고, 동결 온도에서 수행하는 토질시험에 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험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였다. 시험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경향이 분명하게 나오지 않을 경우, 시험과정을 다시 돌아보며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분석을 수행하였고, 시험 방법을 수정해가면서 결과를 만들어 나갔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발생된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고 유의미한 결과들이 도출되면서 연구에 대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약 한 달간의 고된 시험을 마치고 내가 만들어낸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보고서와 논문을 작성하면서 누군가에게 내가 수행한 연구내용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고, 연구자의 길을 가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다시 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은 연구였지만, 내가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자의 길을 선택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간이었고 아직도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연구이기도 하다.


대학원생이라면 누구나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학회를 참석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을 것이다. 국제학회에 참석하여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만나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새로운 학문적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해외에 가는 것 자체가 그 나라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여행의 기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국제학회에 참석하여 학문적 지식을 비롯한 견문을 넓히고 싶었으나, 그 당시에 나는 영어 발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학부 시절 과제로 영어발표를 한 적이 있는데, 발표 중에 머리가 멍해져 준비한 내용의 절반도 말하지 못하고 발표를 망쳐버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영어 발표를 피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고, 2016년 인천대학교에서 ‘ISCORD’라는 국제학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어 이를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기회로 삼고자 하였다. 의욕에 비해 영어실력이 많이 부족하였던 나는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미리 발표 대본을 작성하였고, 빼곡하게 적힌 A4용지 6장 분량의 발표대본을 수백번 읽으며 대본을 숙지하였다. 그 결과 발표 자료를 보지 않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발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본을 숙지하게 되었고,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발표를 마치고 외국인들 앞에서 영어로 나의 연구 성과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영어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는 것에 스스로 굉장히 뿌듯함을 느꼈고, 어떤 두려운 일이든 극복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노력을 하면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대학원 생활 중 미국 샌프란시스코, 하와이, 일본, 대만 등 다양한 나라에서 개최되는 국제학회를 참석할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대학원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내가 성장함에 있어 대학원 생활을 통해 스스로 습득한 학문적 지식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연구실 생활을 하며 만난 인연을 통해 배운 것들이 이제와 생각해 보면 더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서로 격려해주고 협력하며, 때로는 갈등을 겪기도 하였지만 갈등을 해결해가면서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연구실 생활을 하며 짧고 길게 만났던 인연들 모두가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도록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고, 모두가 소중한 인연이다. 특히, 부족한 나를 제자로 받아주시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 조완제 교수님과 연구실에서 동고동락했던 선후배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어디서 보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말 중 ‘내일의 운명은 오늘 만들어 진다’라는 말이 있다. 대학원 생활 중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하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를 지탱해준 힘이 되는 말이었다. 긴 대학원 생활의 끝에 나의 미래는 내가 오늘 무슨 선택을 하고 어떤 생활을 했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믿었고, 밝은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생활해 왔다. 그 결과 진로도 명확하게 결정하지 못하였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내가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며 꿈꾸었던 연구자의 길을 지금도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현재 내가 맡은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매 순간 노력하는 삶을 살 것이며,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지반공학 분야에서 밤잠을 아껴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을 응원하며,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힘을 얻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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