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tec Hanoi 2023 국제학술대회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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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작년 지반공학회 이사회 모임에서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Geotec Hanoi 참석을 적극 추천한 바 있다. 덕분에 Geotec Hanoi 학회 참관기를 쓰게 되었다. Geotec Hanoi 학회는 2023년 12월 14일~15일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되었다. 베트남에서 약 3년 주기로 개최되는 지반분야 국제학술대회로서 2011년에 처음 개최한 이후 이번이 5번째이다. 이번 학회는 베트남 지반공학회(VSSMGE), 일본 지반공학회(JGS), 그리고 베트남 지반분야 건설업체인 FECON에서 대회를 준비하였다. 세계지반공학회(ISSMGE)와 일본국제협력기구(JICA)의 후원도 받았다. 세계 40개국 이상에서 약 1,200명 이상이 참석하였으며 205편의 학회 논문이 게재되는 등 성공적인 행사로 평가된다. 마침 내가 지도했었던 베트남 졸업생이 행사 준비에 참여하다 보니 나도 학회조직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2. Geotec Hanoi 참관기


학회는 2일의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알차게 준비한 느낌이다. 첫날 오전 세션과 이튿날 마지막 세션은 Keynote Lecture가 진행되었으며, 그 사이에는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4개의 Parallel Session을 계속 진행하는 바쁜 일정이었다. 첫날 아침 베트남 예술공연단의 환영 공연 이후 베트남 부총리와 세계지반공학회 회장 등 각계 인사들의 환영 인사가 진행되었다. 


이번 국제행사의 놀라웠던 점은 국제지반공학회 회장을 포함한 약 8명의 해외 석학들이 참여하여 초청강연을 한 것이었다. 특히, 이들은 초청강연 이외에도 2일 동안 진행된 모든 세션의 좌장을 맡아서 각 발표내용에 대한 조언과 예리한 질문들을 하면서 행사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는 참여자들의 연구 및 발표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션 참석자들도 다양한 질문을 통하여 활발한 토의가 이어졌다. 


1박 2일간의 바쁜 일정 속에서 많은 논문들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특히, 일본지반공학회와 일본국제협력기구의 후원을 받다보니 일본에서 많이 참석하였다. 또한, 유럽의 참가자들도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최근 베트남에서 다양한 인프라 건설공사가 활발히 진행되다 보니, 업체 부스의 참여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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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0여 업체에서 참여하여 그들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행사의 클라이막스는 폐회식 행사였다. 개회식과 마찬가지로 폐회식 인사들이 길게 이어지다보니 저녁식사 시간이 예정보다 많이 늦어져서 배고픔이 느껴지던 순간 학회상 시상식이 시작된 것이다. 학회상은 각 세션의 우수발표 논문상, 포스터 우수논문상, 그리고 신진 연구자상 순으로 시상되었다. 수상자가 호명되기 시작하자 참가자들은 수상의 기대감에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돌변하였다. 수상자의 해당 연구팀들은 큰 박수와 환호성을 내며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인하대 송기일 교수님의 지도학생이 우수발표 논문상에 호명되자 한국 참석자들의 박수도 이어졌다. 내 제자들도 혹시나 수상하지 않을까 기대감을 가졌는데 나의 베트남 제자 한명이 포스터 우수논문상 그리고 발표 학생 2명이 신진 연구자상을 수상하면서 배고픔은 순식간에 기쁜 마음으로 바뀌었다. 


학회상 시상은 지금까지 다른 학회들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행사였다. 시상자를 신속하게 결정하기 위하여 각 발표 세션이 끝나자마자 좌장 교수들이 우수 발표자를 선정하였고 포스터 우수상 및 신진연구자상은 학회 기간 동안 학회에서 토의를 걸쳐서 결정하였다고 한다. 


마지막 날 Gala Dinner 행사는 전통 베트남 음식들이 코스로 푸짐하게 나왔으며, 와인과 베트남 전통술 등이 함께 제공되었다.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베트남 전통공연과 음악이 계속 진행되어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참가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할 수 있었다. Gala 행사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행사 기간 중에 초청강연자를 포함한 많은 참석자들의 학회 참석소감 등 인터뷰 영상을 찍은 후에 이를 편집하여 방영한 것이었다. 학회상 시상식도 놀라웠는데 짧은 시간에 이러한 준비를 다하고 학회 행사를 매끄럽게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본 행사 준비에 엄청난 노력을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3. 한국의 밤


학회 첫날 밤 이종섭 교수님의 제안으로 한국 참석자들이 모이는 한국의 밤 행사를 가졌다. 이번 학회에는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다. 고려대 이종섭 교수님, 인하대 송기일 교수님, 부산대 안재훈 교수님, 충북대 정종원 교수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이주형 박사님과 유완규 박사님, SSC 연구원의 최용성 박사님, 베이시스 소프트 안준상 박사님 그리고 각 연구실의 대학원생을 포함하여 약 26분 정도 참석하셨다. 특히, 송기일 교수님은 대학원생 9명 모두를 데리고 참석하였는데 송기일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가 설명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종섭 교수님과 정종원 교수님은 한국지반공학회 국제담당 부회장과 전담이사를 각각 맡고 계셔서 향후 베트남과의 적극적인 학술 교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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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베트남 전통 음식들을 다양하게 시켜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나는 평소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고 고수도 즐겨먹어 모든 베트남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그런데, 처음 먹어보는 일부 베트남 음식들은 채소향이 너무 강하고 맛이 특이해 먹기가 힘든 음식들도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식사를 하면서 각 실험실의 대학원생들은 처음에 서로 어색한 모습이었지만 서로 인사하고 친하게 교류하는 모습에 한국 지반공학의 밝은 미래가 기대되었다.


4. 베트남에 대하여


베트남은 최근 박항서 감독이 축구 국가대표 감독으로 있으면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해진 국가다. 삼성 전자의 베트남 공장이 베트남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등 한국의 베트남 투자도 매우 활발하다. 


베트남은 매우 젊은 국가다. 인구수는 약 9,950만명으로 거의 1억명이지만 평균 연령은 32세에 불과하다.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고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나면서 삼각형의 인구분포를 가지고 있다. 이 덕분인지 인프라와 경제 발전속도가 매우 빠르다. 회사에서도 30~40대의 젊은 임원들이 의사결정을 과감히 하고 프로젝트를 빠르게 진행시킨다. 


참고로 이번 행사의 주관을 맡고 있는 FECON 회사는 베트남의 지반분야 전문회사로 2004년에 설립되었으며 초창기에는 주로 일본이 발주한 공사들을 수주하며 성장하였다. 2008년 PHC 말뚝 공장을 설립하였으며 2017에는 베트남 최초로 TBM 공사를 수행하는 등 새로운 기술의 도입 및 개발에 매우 적극적이다. 직원 수는 2007년 약 400명에서 2022년 약 1,300명으로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연간 약 2,000억원 정도의 매출을 하고 있단다.


내가 2011년 첫 번째 Geotec Hanoi 학회에 참석했을 때 차량의 숫자에 비해 오토바이들이 상대적으로 매우 많았으며 도로 인프라와 건축물들의 환경이 매우 열악하였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새로운 건축물들이 많이 신축되었으며 도로 인프라의 품질이 크게 개선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차량의 수가 많이 증가하였는데 한국의 삼성그룹에 해당하는 빈그룹이 제조한 차량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부고속도로가 1970년에 개통되고 베트남 최초 고속도로가 2002년, 서울 지하철 개통이 1974년, 하노이 지하철 개통이 2021년인 것을 고려할 때 베트남의 인프라 발전 정도는 한국에 비해 약 30~40년 뒤떨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베트남에는 현재 수많은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하노이 및 호치민 등 대도시의 지반조건은 점성토 등이 두텁게 존재하여 공학적으로 좋지 않기 때문에 베트남에서 지반공학 기술은 가장 중요한 토목기술로서 인정받고 있다. 베트남 최초의 토목분야 국제학술대회인 Geotec Hanoi를 개최하고 지금까지 후원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5. 베트남과의 인연


나의 베트남 인연은 2005년 동아대학교에 임용된 후 시작되었다. 그 당시 동아대에 재직 중이시던 정성교 교수님은 인도, 베트남, 몽골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대학원생을 지도하면서 국제화된 연구실을 운영하고 계셨다. 나도 그 영향으로 베트남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6명의 석사 및 박사 학생들을 졸업시켰다. 그 당시 정성교 교수님이 지도하셨던 박사 졸업생이 하노이에 있는 Vietnam Japan University의 교수가 되어 이번 학회의 실질적인 행사 준비위원장 역할을 하였다. 이 졸업생은 FECON의 이사로도 함께 재직 중인데 베트남은 급격히 오르는 물가에 비하여 월급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투잡, 쓰리잡을 뛰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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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학회에는 지금까지 내가 지도했었던 베트남 졸업생들이 나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참석하여였다. 베트남은 중국 유교문화의 영향을 아직 가지고 있다. 학생들을 지도하던 시절에도 베트남 학생들은 좋은 일이 생기면 유학생의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체 실험실 학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곤 했다. 학회 Gala Dinner가 끝난 후 베트남 졸업생들과 맥주집에서 오랜만에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내가 지도교수라고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몇몇 베트남 학생들이 눈물까지 흘리니 나도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교수로써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너무나 보람된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6. 맺음말


베트남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개발도상국이다 보니 국제학회의 학술 수준에 대한 우려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Geotec Hanoi 학회는 2일 동안 집중적으로 개최되어 짧은 시간 동안 해외 학자들간의 집중적인 교류가 가능하고, 해외 석학들의 초청 강연이 많으며 발표논문들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전세계의 물가가 오르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베트남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를 가지고 있어 경제적으로 큰 부담없이 참석할 수 있다. 한국에서 지리적으로 가깝고 학회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은 Geotec Hanoi 학회에 향후 많은 한국 분들이 참여하여 학술적 교류와 즐거운 시간을 함께 가져보길 바란다. 참고로 2024년에는 해양분야의 베트남 국제학회인 VSOE 학회(Vietnam Symposium on Advances in Offshore Engineering)가 베트남 하노이에서 12월 12일~14일의 기간 동안 개최되니 관심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Hard Rock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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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ck이란


지난 2013년 5월에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International Conference for Effective and Sustainable Hydraulic Fracturing(HF2013)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이 국제 회의는 본인의 전공 분야이기도 한 수압파쇄(hydraulic fracturing) 기술에 관한 비교적 전문적인 학술행사였는데, 이 때문인지 우연찮게 한국에서는 혼자 참가하게 되었다. 학회 기간 중 어느 날 아침에 숙소 인근에 있는 Roma Street Parkland 공원을 산책하게 되었다. 혼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꽤 넓은 공원을 둘러보던 중에 생각지도 않은 암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실제 암석이 아니라 암석의 영어 단어인“ROCK’의 네 글자를 세로로 쌓은 형태로 스테인레스 스틸 재질로 만든 높이 3m 정도의 조형물이었다(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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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곳에서 전공 분야의 핵심 키워드인 ‘ROCK’을 조우하게 되어 반갑기도 하였고 한편으로 잠시나마 전공 공장 생각을 잊으려는 휴식의 시간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우연이 아쉽기도 하였다. 곧 분석적인 사고 모드로 전환하여 이 ‘ROCK’ 조형물은 무엇을 의미할까 궁금하여 작품 주위를 유심히 보았지만 작품 제목이나 설명에 대한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에 공원 웹사이트에서 이 조형물을 찾아보았는데 작품 제작자의 의도는 이러한 것이었다.


‘의도된 모호한 조형물, 단어의 다양한 잠재 의미의 탐색.’


대학에서 전공 학문으로 암석 즉 Rock이란 단어를 접하게 된 이래 Rock은 나에게 학문과 생활에서 다양한 의미로 함께 했다. 학문으로서의 Rock은 실험하고 분석하는 대상이었다면, 생활로서의 Rock은 좋아하고 즐기는 대상이었다. 지금까지 40년간 암반공학에 몸담아온 스스로에게 왜 암반공학이었냐고 한다면, 암석이라는 대상이 주는 변치 않는 이미지와 같이 한번 선택한 학문과 직업에 대한 우직함이 있었고 이에 더하여 내면의 감성에 공진하는 인문 예술적 Rock이 함께 상호작용해 왔기 때문이었다. 이를 종합하면 다음의 세 단어 키워드가 되겠다.


‘Hard Rock Blues’


# Hard Rock, 감성


Hard는 공학적으로는 치밀하고 강하다는 의미이지만, 감성적으로는 거칠면서 우직함이다. 매끄럽게 가공된 것이 아닌 우툴두툴한 자연 그대로의 것이다. 음악적으로는 중후한 음량에 우리 고유의 창(唱)과 같이 가슴 내면을 긁는 껄껄한 음색이다. 이러한 감성은 Led Zeppelin, Deep Purple, Queen, 신중현을 좋아하게 했다.


Rock 음악과 관련된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 대학원 시절에 신림동 녹두거리에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는 ‘ROCK’이라는 음악주점이 있었다. 그 가게의 이름이 음악의 락(Rock)이었거나 즐거움의 락(樂)이었겠지만 나에겐 암석의 락(Rock)으로 친숙하게 느껴졌었다. 한번은 교수님을 통해 외부에서 의뢰된 수십 박스의 시추코어 암석물성시험을 몇 주에 걸쳐 실험실 대학원생들과 하였고 교수님께서 그 보수로 꽤 큰 금액의 수표 한 장을 주셨다. 우리는 이 수표를 ‘ROCK’에 맡기고 그날 이후 틈틈이 가서 술과 음악을 즐겼다. 결국 이 ‘ROCK’ 음악주점은 내 학위 논문의 사사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이 추억을 더듬어 얼마 전에 그 동네를 검색해 보았는데 ‘락락 LP바(ROCK樂 LP Bar)’라는 이름의 LP 음악을 들려주는 술집이 있었다. 반가워서 연락해보니 이 가게는 9년 전에 이 동네에 생긴 것이라고 하였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 나오는 아사코와 같이, 추억은 추억으로 남는 게 좋은 것이라고 위안하였다.


# Rock과 Blue, 고귀함


청금석(靑金石)이라는 암석이 있는데, 라틴어로는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라고 부른다. 두 용어 모두 푸른 돌이란 뜻이다. 청금석은 9월의 탄생석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도 보석으로 이용되고 있다. 청금석은 감청색 광물인 천람석(lazurite)이 주를 이루며 이와 함께 방해석과 황철석이 성장한 변성암의 일종으로서, 보통 석회암층이 열변성 및 열수변질을 받으면서 형성된다. 청금석의 화학조성에서 주목할 것은 황(S)인데 바로 이 황 때문에 아름다운 파란색이 나타난다. 청금석은 기원전 5,000년부터 사용되어진 보석으로 고대 이집트 파라오 유물로 유명한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에는 청색의 보석이 장식되어 있는데 이것이 청금석이다. 


미술 색채에 심연의 짙푸른 바다색과 같은 청색을 울트라마린(ultramarine, 군청색)이라고 한다. 이 울트라마린의 원료가 바로 청금석이다. 고대부터 최고급 청금석의 산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바다흐샨(Badakshan)으로 알려져 있다. 울트라마린은 ‘바다 너머‘라는 뜻으로 14~15세기에 아프가니스탄의 청금석이 지중해를 건너서 유럽으로 수입된 것에서 유래한다. 울트라마린은 당시 황금보다도 비싸고 고귀한 청색 안료로서 르네상스시대 화가들에게 이용되었는데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의 옷을 채색할 때만 사용되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리타의 성모>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가 두른 옷의 파란색은 울트라마린 안료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그림 2(좌)), 이와 비교해 미켈란젤로의 <그리스도의 매장> 그림은 오른쪽 아래 부분에 한 사람이 그려질 공간이 비어있는 미완성 작품인데 그 이유는 이 부분에 성모 마리아 모습을 그리려는데 푸른색 옷을 표현할 울트라마린 안료를 구하지 못한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그림 2(중)).


2020년 1월 Heritage Science 저널에 명화 속의 색채 안료를 최신 분석기법으로 밝혀낸 논문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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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명화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으로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어두운 배경을 바탕으로 노랑과 파랑의 색상 조화 속에서 어딘가 응시하는 큰 눈망울과 살짝 열린 입술로 무언가 갈망하면서도 공허감이 묻어나는 소녀의 모습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 못지않게 매혹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그림 2(우)). 논문에서는 반사이미지분광법(RIS), 분자형광이미지분광법(FIS), 매크로X선형광분석법(MA-XRF) 등의 최신 분석기법을 이용해 소녀가 두른 머리 스카프의 청색 부분이 울트라마린 안료인 것으로 밝혀냈다. 이 그림을 소재로 한 영화 ‘Girl with a pearl earring’(2003년, 현재 Netflix 제공)에서도 이 청금석과 울트라마린 안료의 처리 과정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 소녀 주인공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의 이미지가 실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그림의 소녀와 잘 어울렸다는 감상 기억이 남아 있다.


# Rock과 Blue, 상상력


파랑색은 상상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넓혀주는 색채라고 한다. 파랑은 때로 차가운 느낌을 주지만 내면의 온도는 빨강보다 높으며 에너지 레벨도 더 높다. 불꽃색에서 빨강은 불완전 연소 상태에서 나타나지만 파랑은 완전 연소 상태일 때 나타난다. 자신을 완전히 불태우는 열정, 이것에서 몰입과 창의의 에너지가 발휘되는 것이다. 


파랑은 광물과 암석, 나아가 지구의 색채이기도 하다. 1972년 12월, 마지막 유인 달착륙선인 아폴로17호 우주인들이 달을 향해 가면서 지구를 찍은 사진의 제목은 블루 마블(Blue Marble)인데, 인류 역사상 가장 널리 퍼진 사진으로 꼽힌다. 지구 심부에도 블루가 있다. 지하 500 km 심부에 있는 상하 맨틀의 경계에는 깊고 선명한 푸른 광물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것은 감마상(γ-phase) 감람석으로 링우다이트(ringwoodite)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또한 물을 함유하고 있다고 연구 보고되고 있다. 세계 과학자들이 지구에서 가장 깊은 블루이자 지구 내부에 존재하는 물을 함유하고 있다는 이것에 대한 입증과 함께 지상보다 압력이 20만 배나 큰 심부 맨틀의 고온고압환경(20 GPa, 1200℃)을 구현하여 이 블루 광물을 합성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도전은 블루 색채가 갖는 상상과 창의의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수십년간 암반공학과 지하공간을 전공하면서 지구 심부로의 접근에 대한 관심이 쌓여왔다.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가 지구 중심까지의 연옥과 지옥의 세계를 통과하여 반대편 천국 입구에서 연인인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모습을 상상하였고, ‘신곡’에 나오는 지하 세계를 그린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를 접하면서 지구 심부를 상상하였다(그림 3(좌)). 그리고 2003년에 개봉된 영화 ‘The Core’에서 지구 핵(core)까지의 굴착 탐사선, 특수 레이저 빔을 이용한 터널링, 물체 투과 이미지 탐지 등의 공상과학을 보면서 심지층 탐색의 상상을 넓혔다(그림 3(중)). 이를 기반으로 연구원 차원 R&D로 지하 수 km 심부 지각 특성 규명과 거동 탐지의 비전과 목표를 담은 ‘InDEPTH’와 ‘TELLUS’ 프로젝트를 기획 추진하게 되었다(그림 3(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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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ck과 Blue, 융합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융합을 얘기할 때 독일의 문호 괴테(Goethe)가 떠오른다.침철석이라는 갈색 광물이 있다. 화학적으로는 산화수산화철(FeO(OH))로서 제철용 철광석이나 갈색 안료로 쓰인다. 이 침철석의 영어명은 괴타이트(goethite)인데, 이것은 괴테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괴테는 광물과 지질학 연구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그가 모은 광물 수석은 6,500여 점에 이르렀다. 1806년 이 광물이 독일에서 처음 보고되었을 때 광물학 발전에 기여한 괴테의 공적을 기려서 괴타이트(goethite)로 명명하였다.


괴테는 빛의 광학 연구에도 뛰어났는데 그의 ‘색채론’에서 ‘푸른색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진 기묘한 색’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인문과 과학의 정신을 시로 융합해냈으며, “과학은 시에서 태어났다. 시대가 바뀌면 두 분야가 더 높은 차원에서 친구로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문학, 철학, 광학, 식물학, 생물학, 광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관심과 업적을 통해 ‘시는 모든 과학의 어머니’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두루 섭렵한 그의 사상은 현대 문명이 주창하는 타 분야간 융합을 통한 상상력과 창의성의 발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듯 Hard Rock Blues는 나에게 전문직업적 대상이면서 또한 삶을 풍부하게 하는 예술적 취미이기도 하고 창의적 사고의 기반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조금씩은 매끄럽게 다듬어지겠지만 여전히 거친 날 것으로의 Rock으로 함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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