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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양성원

연세대학교 OB 남성합창단
(GLEE CLUB) 지휘
(ssgtyang@hanmail.net)


‘별’을 좇아 ‘방랑’하라!



지금부터 불과 약 10년 후인 2030년까지, 현재 미국 노동인구의 최고 1/3까지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이 연구를 발표한 글로벌 컨설팅 전문업체 맥킨지(McKenzie Global Institute)는 경제지 포브즈(Forbes)와 함께 최고의 비즈니스 서적 한 권을 선정했다. 마틴 포드(Martin Ford)의 ‘로봇의 부상: 기술 그리고 일자리 없는 미래의 위협(Rise of the Robots: Technology and the Threat of a Jobless Future)’이다. 이제 우리는 더욱 많은 이들이 방황하게 될 불확실성 한가운데에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법을 공부하길 원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 몰래 음악을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하여 그는 당대 최고의 음악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마저도 중퇴하고 어느 순회 악단에 들어가 방랑을 계속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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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랑 속에서 그는 시골과 그곳 서민들의 삶을 면면이 들여다보고 느끼며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리고 아무런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오페라에 담아냈다. 시골 음악교사로 지내던 중(27세), 그는 ‘단막 오페라 현상공모’에 자신의 그 작품을 출품했고, 1위에 당선되면서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1863~1945)는 그렇게 방랑하였고, 그 방랑은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 시골 기사)라는 열매를 맺었다.


‘시골 기사’라는 제목만으로도 그 내용이 어떤지 잘 느껴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인 기사는 윤리와 철학으로 무장되어 약한 자를 돕고 적과는 용감하게 맞서는 ‘도시의 기사’다. 하지만 마스카니의 그 기사는 전혀 다르다. 쉽게 사랑에 뜨거워지기도 식어버리기도 하고, 쉽게 화내기도 웃기도 한다. 경박하게도 보이면서 그래서 오히려 순박해 보이기도 한다. 도시와 문명의 그 세련됨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거칠디 거친 원석 그대로의 모습이다.


마스카니의 방랑은 프랑스혁명(1787~99)으로 인한 수많은 변화들 한가운데에 있었다. 이전에 귀족, 부호들이 즐겼던 영웅, 신화 등을 주로 다루었던 예술, 문화는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그리는 데로 이제 그 중심을 옮겨갔다. 소위 말해, 비주류였던 ‘B급 문화’가 주류에 자리한 것이다.


당시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베리스모’(verismo; 사실주의)라는 이름표를 달고, 문학에서 시작하여 오페라로 이어갔다. 새로운 문학이 새로운 음악으로 옷 입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음악에서도 기존의 어렵고 난해한 기교, 과장을 버리고, 극중 인물의 감정 표현에 충실하여 비교적 단순하고 편안한 선율과 그에 따른 표현법들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오페라의 베리스모 시대를 연 시초이자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는 작품이 바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이다. 그리고 많은 작곡가들이 그 뒤를 이었다. 19세기 파리의 어느 허름한 옥탑방, 추운 겨울날 땔감도 없어 시인의 원고뭉치를 태워야 할 만큼 가난한 예술가들, 그 가운데서 피어오르는 따듯하고 가슴 아픈 사랑... 바로 그 오페라 <라 보엠>의 작곡가 푸치니(G. Puccini)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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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입을 모아 ‘불확실성의 시대’를 얘기한다. 이는 삶이 좇을 ‘별’이 점차 사라져 감을 의미할 것이다. 이에 따른 불안으로 많은 이들이 쫓기고 방랑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그 세상 별들이 사라져 간다는 것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로 인해 내 안에서 두려움이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그 두려움이 우리들 마음속의 별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를 두고 ‘재앙’이라 여겼다.

영어단어 ‘disaster’는 dis(떨어져,없어져)+astro(별)의 합성어다. 즉 ‘별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것이 곧 ‘재앙’이란 의미다. ‘대공황’이라는 ‘재앙’을 이기게 했던 루즈벨트(F. D. Roosevelt) 대통령의 그 말을 되짚어봄 직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세상에서 바라볼 별들이 계속해서 없어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아주 많이...! 분명한 사실이며, 현실이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 내 마음의 별을 찾아 나설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지금이야말로 그 별을 찾아 방랑하기에 딱 좋은 때가 아니겠는가! 그 방랑의 끝에 맺게 될 열매가 더 달콤하고 풍요롭지 않겠는가!


한동안 ‘투잡족’에 대한 기사들이 꽤 있었다. 하나의 일자리로는 생계가 어려워, 부업에 나서는 이들의 얘기다. 근래에는 ‘N잡러’를 말하는 글들이 점점 눈에 띈다. 이들은 자기 스스로, 자신들의 마음의 별을 좇아, 원하는 여러 개의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방랑의 시대에 들려오는 기분 좋은 방랑의 소식이다.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특히 간주곡은 더없이 아름답고도 신비롭다. 더 말할 나위 없을 정도다. 나아가 이 곡은 ‘아베 마리아’라는 제목으로 가사까지 입혀져, 또 하나의 불멸의 아베 마리아 선율로 탄생했다. 마스카니가 방랑으로 얻은 생의 가장 큰 선물이요, 별일 것이다. 그 별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별은 내 눈에 보여서 있고 보이지 않아서 없는, 그런 게 아니다. 수없이 많은 별들이 내 얼굴 위로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날이 있는가 하면, 짙은 구름에 가려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날도 있다. 하지만, 보라! 그 별들은 예전부터 지금껏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다. 또 앞으로도 여전히 반짝일 것이다. 셰익스피어도 그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부루투스여! 그 잘못은 별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네!”


[음악감상]

♬ P. 마스카니, 아베 마리아, 메조 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 (Elina Garan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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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 주

강원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cj32@kangwon.ac.kr)


나쁜 습관


평소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다. 구매한 책들의 내용이 너무 궁금하여 이 책 조금 읽고, 저 책 조금 읽다 보니 지금도 북유럽, 국제정치, 대만 그리고 천체물리 등 무려 4권의 도서를 집과 사무실에서 동시에 읽고 있다. 쉬운 책은 1-2 일 정도면 완독할 수 있지만 어떤 책은 몇 달을 두고서 읽다 쉬다를 반복하다 보니, 흐름이 이어지지 못하고 끊겨서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마치게 될 경우도 있다.


어린 시절 놀다가도 밥 때만 되면 그리 많지 않는 책 가운데-하나 못해 만화책이라도-뭐라도 펼쳐놓고 읽으면서 밥을 먹었었다. 쉽게 말하자면 책이 없으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괴벽(怪癖). 오래 전 일이라 왜 그랬었는지는 이해가 되진 않지만 아마 책 없이 밥을 먹으면 뭔가 허전해서 그랬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 많이 혼났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진 정말로 나쁜 습관.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지는 않아서 지금은 책을 읽다가도 밥을 먹게 되면 곁에 없어도 이를 잘 이겨내고(?) 가리는 음식 전혀 없이 잘 먹고 있다.


학교 사무실 및 집에 다양한 책이 쌓여 있다. 전공 책을 제외하고도 어지간한 중고서점 하나 정도는 무난하게 차릴 수 있다. 예전엔 이런저런 중고 전집류 도서를 많이 구매했었는데 이제는 그 비용뿐만이 아니라, 들이는 책에 비해 내보내는 책은 거의 없다 보니, 공간문제가 생겨서 거의 그러지 못한다. 그런데 이 지경이 되다 보니 특정한 책을 찾으려면 어디 있는지 몰라서 한동안 책더미를 뒤지면서 개고생을 할 때가 있다(‘개고생’은 비속어가 아닌 당당한 표준어이다). 주제별로 잘 분류를 해 놓으면 그럴 일이 없겠지만 성격상 정리를 잘 하지 못하며 게다가 읽던 책을 아무데나 던져놓기 때문에 맨날 책 찾느라 아까운 시간을 많이 허비한다. 언젠가 개인도서관 같은 것을 만들고 책들을 주제별로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인터넷 서점은 물론 인터넷 중고서점의 계정의 장바구니에는 늘 수백권의 책들이 담겨 있다. 일전에 스스로를 bookaholic 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꼭 구매하고 싶은 책이 있으면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계속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명품중독자와 그 증상이 매우 유사하다고 하겠지만, 그에 비해 경제적인 부담은 훨씬 적은 그나마 바람직한(?) 중독이긴 하다. 최소 2~3일에 한번은 인터넷 장바구니에 들어가서 살펴보는데 충동구매를 하지 않으려고 정말로 자제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무작정 주문을 하거나, 어떤 때는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을 실수로 또다시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건 해외에서건 서점에 들어가면 절대로 빈손으로 나오지는 못한다. 그런데 보통은 정말로 좋은 책을 만나게 되는 기쁨도 느끼지만, 불필요한 책을 심사숙고 하지 않고 잘못 선택하여 나중에 엄청 후회할 때가 자주 있다. 평생을 함께할 친구들인데 이를 불과 수분 만에 결정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요사이는 오죽하면 서점에 가급적 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혹은 떠난다)는 유치한 말이 바로 이 경우에 적용될 수 있겠다. 따라서 보통은 인터넷 서점에서 장고 끝에 구매여부를 결정한다(그럼에도 악수(惡手)일 경우가 없진 않다). 하지만 최근에 많이 생긴 오프라인 중고서점만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은 들어가서 사고를 치게(?) 된다.


인터넷 중고서점에 들어가서 잘 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책을 주문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1960~70년대 발간된 희귀도서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지나친 욕심, 즉 서탐(書貪)으로 인해 다양한 책을 주문하고 있다(그런데 희귀도서를 읽는 참 맛을 알게 되었기에 주문을 멈출 순 없다. 아쉽게도 1950년대 이전의 도서는 워낙 고가라서 어지간해서는 그림의 떡이다). 또한 특정 작가의 도서를 재미있게 읽고 나면 그 작가의 모든 도서를 다 구비하려고 한다. 신간, 중고서적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수집하다 보니 실제로는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을 구매하게 된다.


몇 년 전 책을  많이 버리거나 중고로 팔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몹시 후회한 적이 있다. 그 이후 책을 잘 버리지 못한다. 오히려 남이 버린 책을 쓰레기통에서 가져 온 적도 몇 번 있다. 어쩌면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소위 저장강박증(compulsive hoarding syndrome, 貯藏强迫症)의 초기 단계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제 한 권을 버렸고 이 글을 준비하면서도 버릴 놈 2권을 골라냈으니 아직은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버릴 놈들을 추려볼 것이다.


이젠 이러한 나쁜 습관들을 버리고 개과천선(?)하여 꼭 읽을 책만 구매를 하고, 불필요한 책은 매몰차게 버리고, 일단 시작하면 완독할 때까지 한 권만을 읽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으나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여 마음속에 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습관이란 것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무서운 적수가 아닐 수 없다. 다만 변명 같지만 매년 도서구매에 드는 비용이 적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취미 혹은 유흥비와 비교해 보면 매우 저렴한 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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