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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양성원
연세대학교 OB 남성합창단
(GLEE CLUB) 지휘
(ssgtyang@hanmail.net)

                      



쿨다운(Cool Down)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자신의 그림들을 통해, 미국이 1920년대에서 60년대까지 누리고 있던 호황, 그 이면에 만연되어 있던 당시 사람들의 고독, 절망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 그림들 중에서도 특히, ‘뉴욕의 방’(1930년대)!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한 부부! 하지만 남편은 불안한 직장생활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잔뜩 쌓인 일의 연속 때문인지 신문에만 몰두해 있고, 그 부인은 단절된 소통 가운데서 피아노 건반 몇 개를 맥없이 무의미하게 툭툭 치면서, 각자의 고독 속에 갇혀 있다. 지금의 우리들 모습과도 그리 다르지 않아 보여 놀라움과 함께 가슴이 저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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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부를 누림과 동시에 대공황을 겪었고, 2차 세계대전까지 치렀던 미국! 그 뒤로 밀려오는 허탈감과 울적함 그리고 전후 혼란! 바로 그 시기에 등장한 ‘쿨 재즈’(Cool Jazz)는 그 모든 열기 혹은 광기 그리고 혼란들을 차분히 ‘식혀주고’(cooldown) 위로해주고 있었다.


‘쿨 재즈’란 그 이름만으로도 상당히 와 닿는다. 이전 시대의 강렬하고 화려했던 비브라토와 다이내믹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고, 부드러운 음색의 그 흐름은 한껏 이완되어 있다. 그 끝없이 고요한 서정성은 멜랑꼴리하기까지 하다. 그 중에 떠오르는 한 곡, ‘부드럽게(Tenderly)’! 생각은 약 30년을 되돌아가, 쳇 베이커(Chet Baker, 1929~1988)의 고독하고 슬픈 듯 부드러운 그 트럼펫 연주에 잠시 푹 빠져있다, 다시금 2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은 응석받이 어린 아이에 불과한 아들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본 아버지를 따라, 그는 유럽 전체를 여행하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 연주하였으며, 또 인정도 받았다. 그에 따른 부와 명성 또한 당연했다. 하지만, 그 모든 화려함과 열광들 뒤로 그의 몸과 마음은 점점 힘겨워하고 있었다.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는 그렇게 너무도 짧았던 인생의 마지막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죽기 두 달 전쯤, 자신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을 썼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제2악장 ‘아다지오’(Adagio; 느리게)! 클라리넷의 시종일관된 절제는 숨 막힐 듯 아름답고, 다른 악기들과의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다. 협주곡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독주 악기의 ‘카덴차’(cadenza), 즉 극에 달하는 기교, 즉흥성, 창작성으로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음질치는 화려함과 열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세상의 모든 흐름들이 잠시 멈춘 듯, 부드러운 위로와 고요한 아름다움으로 그 깊이를 더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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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나 있는 듯,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는 듯, 그 뜨거웠던 모든 열정들을 서서히 식히고 있는 듯, 클라리넷 선율은 담담하게 흐르고 있다. 그렇게, 그 선율은 화려했던 만큼이나 힘겨워했을 모차르트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20세기 중반의 미국이라고 하는 한 국가가 겪었고, 18세기의 모차르트라고 하는 한 개인도 피할 수 없었던 그 상황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 가운데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새 우리는 그 속에서 익숙해져 있음을 돌아보게 된다. 호황의 이면에 따르는 몰락, 화려함이 더해주는 고독! 그로부터 이어지는 허전함과 쓸쓸함, 그리고 절망!


이를 일컬어 일찍이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다. 또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절망’이라고 하는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열정적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볼 게 있을 것 같다.


몸과 마음 모두가 절망의 열기로 가득 찬 상태에서는 코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오늘날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온갖 흥분의 열기, 절망의 열기 등의 상태를 생각해 보면 더욱 공감이 간다. 그런 가운데서 무슨 ‘희망’이 보이겠는가? “희망을 갖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 전에 우리의 모든 이성을 마비시켜온 그 ‘열기’를 잠시 동안 식히는 게 우선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서야 뭔가 하나씩 새롭게 보이고, 비로소 희망도 다시 보일 게 아닌가?


우리네 옛 사람들이 전해준 바로 그 지혜의 한 수는 바로 이를 두고 말한 것 같다. ‘수승화강’()! 물은 위로, 불은 아래로! 즉, ‘찬 기운은 올리고 따뜻한 기운은 내려라!’ 오늘날의 말투로 바꿔보면, 머리가 ‘쿨’(cool;시원한)해야 이성적인 사리판단이 ‘쿨’(cool;냉정한, 침착한, 신중한)하게 설테고, 심장은 ‘핫’(hot;뜨거운)해야 모든 일들을 ‘핫’(hot;열정적인, 활발한, 굉장히 재미있는)하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도시를 가득 채웠던 한낮의 소음들이 점점 잦아들고, 온통 화려했던 저녁 불빛들도 하나둘씩 꺼져가고, 어느덧 짙은 어둠이 그 고요함을 더해가는 도시의 깊은 밤! 저녁 시간 내내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던 사람들도 대부분 돌아가고, 이제는 몇 명 남지 않은 어느 레스토랑에 홀로 앉아 있다. 때마침, 하루의 뜨거웠던 흥분을 가라앉히는 고요함인 듯, “연극이 끝나고 난 후”의 쓸쓸함인 듯, 모차르트의 그 클라리넷 선율이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음악감상]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2악장, W.A.모차르트, played by 샤론 캄(Sharon Kam)

        

             



♬  ?부드럽게(Tenderly), by Chet B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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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주
강원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cj32@kangwon.ac.kr)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그동안 거의 모든 책을 직접 구매해서 읽었다. 심지어 E-book 으로 읽어본 적도 거의 없다(전공서적이나 논문을 제외하고는). 역사서, 과학서 등은 물론이고 한번 읽고 나면 더 읽을 가능성이 매우 낮은 소설책도 신간이건 중고서적이건 무조건 사서 읽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막상 구입하고 보니 내용이 매우 실망스럽거나 아니면 당초 생각한 내용이 아니거나 혹은 너무 난해해서 도중에 포기한 책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든 생각… 도서관을 이용해보자! 이런 것을 유레카(Eureka)라고 하던가? 이후로 많은 책(특히 소설책)을 도서관에서 대여하여 읽고 있다. 세상에 이런 신세계가 있었다니! 도서관에 이렇게 많은 책들이 필자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어떤 경우는 절판되어 중고시장에서 매우 고가에 구매되고 있어 엄두도 못내던 책들도 많은 경우 도서관에서 대여가 가능한 것이 아닌가! 예를 들자면 아시모프의 SF 소설 [로봇시리즈]는 그 동안 마음만 간절했는데 최근에 도서관을 통해 시리즈 가운데 2권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특정주제에 대한 책을 빌리면 그 책이 꽂여있는 서가 근처에 유사한 주제의 책들이 매우 많아서 덤으로 몇 권 더 빌리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이로 인해 최근 도서구매에 들어가는 비용을 많이 절감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책을 구매하고 소유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은 구매를 자제하려고 한다. 즉 도서 구매에 대한 필자만의 간단한 원칙을 아래와 같이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취미삼아 수집하는 1950-80년대에 발간된 중고도서들은 도서관에서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앞으로도 할 수 없이 중고시장에서 구매해야 할 것 같다.


1. 소설은 가능한 도서관을 이용하여 읽는다.
2. 다른 분야의 책들도 가급적 도서관을 통해 먼저 읽는다.
3. 읽고나서 평생 소장할 가치가 있을 것 같으면 그때 가서 구매한다.
4. 전집류는 가급적 구매하지 않는다.
5. 조금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신간도서는 도서관을 이용한다.
6. 당장 읽지 않으면 병이 생길 것 같은 신간도서는 구매한다.


예전에 읽었던 일본의 정리컨설턴트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진짜 인생은 정리 후에 시작된다] 정리수납법은 누구나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저자의 정리원칙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주장은 ‘설레지 않는 물건은 과감히 버려라’. 또한 책과 관련된 조언은 ‘언젠가 읽으려는 책은 버려라’ 이다. 너무나 간단한 진리인데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읽을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오래 전 구매했지만 읽지 않고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많은 책들을 인터넷 중고시장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즉 개인사업자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몇 건의 거래가 성사되었는데 은근히 재미도 있다. 또한 평생 읽을 가능성이 없는 책이면서 중고로 팔릴 가능성도 별로 없는 책은 주저하면서도 조금씩 버리고 있다. 하지만 도서구입 중독증이 완치 된 것은 아니라서 인터넷 중고시장에서 판매를 시도하는 동시에 여전히 새로 구매할 책들을 살펴보고 있으니 이 병이 완치가 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즉 책 팔아서 모은 돈으로 다른 책을 사는 악순환이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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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다룬 일본의 소설 [대망 시리즈, 전 12권]를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있는데 이 책 만큼은 계속 빌려서 읽을까 아니면 중고시장에서 구매할까를 몇 달 동안 고민 중일 정도로 평생을 두고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의 필자 같았다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 구매를 했을 텐데 책을 구입하는 것을 두고 이렇게 장고(長考)를 한 적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이 2000년대까지 한국에서 엄청한 인기를 누린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역사소설이지만 일종의 인간경영 처세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분량이 엄청나게 많은 열국지, 삼국지 혹은 초한지 정도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재 시리즈의 2부를 읽고 있는데 원체 분량이 많은지라 완독에는 거의 몇 개월이 걸릴 것 같다. 대망 1-12은 토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소설이며, 대망 13-36은 대망 1-12이 워낙에 큰 인기를 얻다 보니 시리즈를 다소 인위적으로 추가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및 일본개화기를 다룬 여러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들도 요시카와 에이지와 시바 료타로라는 뛰어난 역사소설 작가들의 작품으로 완성도가 높은 매우 훌륭한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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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국내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유명작가인 김훈의 부친인 김광주의 무협소설 [정협지 情俠誌]였다. 우리나라 무협소설의 효시로 불리는 이 작품은 김광주 작가가 대만소설 [검해고홍 劍海孤鴻] 을 번안해 경향신문에 연재했었던 소설이다. 무예를 하는 집안의 쌍둥이가 어려서 헤어졌다가 고수들의 결투장에서 형제임을 알게 된다는 지금 시각으로는 매우 유치한 내용이지만 5.16 직후 냉각된 사회에서 장풍과 신기한 검술을 선보이면서 그 당시 대단한 인기를 었었다고 한다.


작가는 초창기엔 중국소설 번역(삼국지 등)을 주로 했으나 이후 자신이 직접 무협소설을 집필하였다. 무협소설과 함께 1990년대까지는 역사소설이 큰 관심을 받았으며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은 1984년과 1986년,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는 1992년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한 바 있다. 또한 이은성의 [소설동의보감]은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또한 박종화, 유주현 같은 탁월한 역사소설 작가들도 있었다. 한편 과거에는 유명작가들이 다양한 역사소설을 쓴 바 있는데 이광수, 현진건, 김동인, 김동리, 정한숙 등이 역사소설을 집필한 바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역사소설은 이문열의 [삼국지]를 제외하고는 독자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필자가 이전 글에서 비판한 바 있는 김진명 작가의 [고구려 시리즈] 같은 것을 제외한다면....). 그런데 영국의 중세를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에서 배우들이 미국식 영어를 쓰면 어색한 것과 마찬가지로 무협지나 역사소설은 세로로 인쇄되고 다소 딱딱하지만 한문투로 씌여진 것이 책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므로, 역시 오래전에 출판된 것이 그 맛이 훨씬 더 깊고 진하다. 위에서 언급한 [정협지] 초판은 중고시장에서 너무 고가라서 아직 구매를 못하고 있지만(아쉽게도 도서관에는 없다) 중고도서 판매 사업(?)이 잘 되게 된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 정협지 초판의 경우 당시 판매가와 현 중고시장에서의 거래가를 따져보면 그 가격이 거의 100배 이상으로 상승했으며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엄청난 수익을 보장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와 같이 중고고서를 구입해서 읽은 후 수십년 잘 간직하는 것도 일종의 소박한 재테크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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