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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양성원
연세대학교 OB 남성합창단
(GLEE CLUB) 지휘
(ssgtyang@hanmail.net)

                      



내 이름은 ‘기회’(opportunity)다!

        

80년대 후반에 그 전성기를 누렸던 가수 변진섭의 수많은 히트곡들 가운데서 ‘희망사항’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이 곡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리 호감도 가지 않았고, 게다가 새 앨범에 들어갈 곡들도 이미 차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 “약간의 라이벌 구도”에 있던 이문세에게 주는 게 싫어서 결국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랬던 곡이 그렇게 히트 칠 줄이야! 기회의 신 ‘카이로스’(Kairos)는 그렇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이 곡이 한창 나올 당시, 노래 끄트머리에 귀에 익숙한 선율이 흐르는 것을 듣고, 참 재치있고 곡 분위기와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조지 거쉰(George Gershwin, 1898~1937)의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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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Rhapsody;광시곡)는 19세기 초 이래로 정형화된 틀이 없이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이면서 격한 감정의 기복을 표현해내는 음악에 이름 붙여져, 클래식의 한 장르를 이뤘다.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집시의 노래)이 그렇고,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붐을 일으키고 있는 영국의 록그룹 퀸(Queen)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렇다. 그리고 ‘블루’(Blue)는 일반적인 블루스 음악이 지니고 있는 어둡고 우울함의 의미로, 당시 공장 노동자들의 삶의 애환을 대변한다.


거쉰은 이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음악을 한 데 담았다. 다시 말해서, 현실의 고달픈 삶을 노래하는 미국적인 서민음악 재즈를 클래식 음악이라는 예술에 담아 승화시키는 데에 시간과 땀을 쏟았던 것이다. 그 결과로 얻게 된 여러 작품들 중 단연 최고로 꼽힐 수 있는 곡이 바로 ‘랩소디 인 블루’이다.


사실, 이 곡은 거쉰 혼자만의 작품은 아니다. 원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작곡된 것을 당시 화이트먼 밴드의 편곡자였던 퍼디 그로페가 오케스트라 편곡을 하여 무대에 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연주되기 시작한 것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곡이다. 기회의 신은 때로는 이렇게 도움의 손길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 같다.


또, 한 리허설에서 클라리넷 연주자 로스 고먼(Ross Gorman)이 17개 음을 미끄러지듯 상승하며 거쉰에게 장난치듯 연주한 적이 있었다. 거쉰은 이 소리에 반하여 실제 콘서트에서도 그렇게 연주하도록 했다. 마치 사이렌을 울리는 듯한 이 도입부는 이렇게 탄생하여 오늘날의 ‘랩소디 인 블루’를 완성시켰다. ‘카이로스’는 이처럼 장난스럽게 다가오는 때도 있는 것 같다.


90년대 히트곡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에서는 곡 전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흐르는 비발디의 ‘사계; 겨울’이 참 인상적이었다. 원래는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을 쓰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비싼 저작권료로 인해 결국 포기하고, 대신 비발디의 곡을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때로는, ‘기회’는 최선이 여의치 않아 선택한 차선의 모습으로 다가와 결국 최선의 결과를 선물하기도 하는 것 같다.


살다보면 비록 계륵이라 하더라도 붙잡아야 하는 때가 있다. 바로 옆에 있던 누군가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경우도 있고, 순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난으로 다가오는 때도 있다. 또 어쩔 수 없이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기회’는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매순간 우리들 옆을 지나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실체를 결코 알아보지도, 예측하지도 못한 채 ‘기회’가 오지 않음을 원망하며 실의에 빠져 있곤 한다. 그 이유는 이태리 토리노 박물관에 있는 카이로스(Kairos) 조각상 아래에 소개된 글 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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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발가벗은 이유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함이고, 앞머리가 많은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사람들이 금방 알지 못하게 하고, 내가 앞에 있을 때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뒤로 지나가버리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며,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는 기회가 있을 때 저울을 꺼내 정확히 판단하라는 의미이며,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 이유는 칼같이 결단하라는 의미이다. 내 이름은 ‘기회’(opportunity)다.”


아! 여태껏 생각을 완전히 잘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기회’란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그 많은 기회들 가운데서 단지 잡을지 말지의 선택의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래! 그 동안, 너무도 평범해 보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그냥 보내버렸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선택의 기로에 서서 망설이기만 하거나, 슬금슬금 기어 올라오던 그 스트레스들을 감당하기 싫어 혹은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피하고 말았던 때는 또 얼마였던가! 그리고는 여전히 “분명 뭔가 특별한 게 있을꺼야!”라며 막연하게만 기다려온 시간은 또 얼마인가!


아니! 바로 지금, 그 ‘어떤 놈’이 내 옆을 유유히 지나고 있지 않을까? 혹은 어떤 선택을 강요하며 이미 내 앞에 불쑥 다가와 있는 건 아닐까? 앞머리 길게 늘어뜨려 얼굴을 가리고, 그 속에선 조롱 혹은 장난끼 섞인 미소를 살짝 입가에 머금은 채!


[음악감상]

♬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 조지 거쉰(G. Gershwin), 레오나드 번스타인(L. Bernstein) &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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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주
강원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cj32@kangwon.ac.kr)

                      



일본을 제대로 알자

        

그동안 세계 각국의 소설, 역사, 문화, 정치 등에 대한 책을 읽어 왔다. 그 주요 대상국은 중국, 대만, 태국, 홍콩, 인도, 호주 그리고 영국이었다(동남아시아와 유럽 관련 책도 어느 정도 읽었다). 그 덕분에 해당 지역의 전문가 못되더라도 그 나라 사람을 만나면 몇 시간 정도 즐겁게 담소를 나눌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독서편력에서 일본은 필자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으며 소설책을 좀 읽은 것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외면당해 왔다. 부끄럽지만 필자는 엄청난 반일주의자(혹은 혐오주의자) 였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경로로 세뇌되어 왔던 것이다. 1950년대 말 무렵 한 출판사에서 [세계전후(戰後)문학전집]을 기획할 때 일본문학은 배제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물론 다행히 시련을 극복하고 겨우 발간되긴 했다. 최근에도 한 국무총리후보자의 지난 15여년 동안의 해외출장지가 대부분 일본이라 각종 의혹이 제기되었을 정도로 반일감정은 거의 전 국민들에게 깊고 넓게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일본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맹목적으로 미워하는 것은 필자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20여 년 전 화제가 되었던 책[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을 다시금 보니 아프지만 진실이라는 점이 필자를 부끄럽게 했다(저자는 지한파 혹은 친한파 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인이다). 앞서 언급한 여러 나라들에 비해 그동안 일본은 고작 3회 다녀왔을 뿐인데 최근 오사카를 다녀온 것을 계기로 무턱대고 일본을 증오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많이 바꾸게 되었다. 성숙한 국민의식, 청결, 친절, 안정적인 사회시스템 등 분명 일본이 우리보다 한 수 혹은 몇 수 위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친일파로 돌변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최소한 일본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필자에게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계기로 일본관련 각종 소설, 역사, 문화 등 다양한 책을 많이 읽어오고 있는데, 그동안 일본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도 국내의 저명 기업인, 정치인들이 필독서로 추천하곤 했지만 요즘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일본의 역사장편소설 [대망]에 큰 관심이 생겨서 읽을까 말까 고심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대망은 대략 일본판 삼국지 혹은 열국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일본을 통일하고 근대화의 기반을 형성한, 일본 기업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토쿠가와 이에야쓰에 대한 책인데 분량이 원체 많다 보니(각권이 약 650 페이지에 총 12권 !) 완독하려면 작정하고 읽어도 몇 달은 걸릴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설이 원체 인기를 누리다 보니 지금은 각 세트가 12권인 대망 1-3 시리즈로 발간되어 있어 총 3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망 1: 도쿠가와 이에야스 천하통일기, 대망 2: 도요토미 히데요시 천하쟁취기, 대망 3: 사카모토 료마 메이지유신 성공기]. 즉 이를 완독하려면 아마 1년을 온전히 투자해야 할 것 같다. 그리하여 필자의 행복한 고민은 이 순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에야쓰, 에도를 세우다]라는 역사소설을 읽었다. 이는 도쿄의 옛지명인 에도의 건설을 다룬 건설소설이다(물론 이런 용어는 없을 테지만..... 에도가 도쿄의 옛 지명이란 것을 이 소설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을 정도로 일본에 무지했었다). 임진왜란의 주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토쿠가와 이에야쓰를 견재 할 목적으로 당시엔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오지인 에도로 그 근거지를 옮길 것으로 명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시의 에도는 충적층으로 구성된 해안가의 저지대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못한 황무지였다. 이에 이에야쓰는 강의 물길을 돌리고, 먹는 물을 공급하고(이를 상수(上水)라고 했다) 성벽과 대규모 건축물을 건설하였다. 소설은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화폐를 주조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4장은 건설에 대한 것으로 아래와 같으며 일종의 연작소설 형태를 취하고 있다.



1장: 강줄기를 바꾸다
2장: 화폐를 주조하다
3장: 식수를 끌어오다
4장: 석벽(성벽)을 쌓다
5장: 천수각(대규모 건축물)을 올리다


이 소설에서는 토목, 토목기술이라는 용어는 물론이고 상수도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는 흙막이라는 용어도 등장한다. 그밖에도 저지대 습지에 대한 대규모 매립공사, 말뚝시공, 상수관로 매설을 위한 터파기, 토압증가 및 하부 기초지반(점토)의 지지력 부족에 의한 성벽의 붕괴-이에야쓰는 건설책임자에게 할복을 명령한다- 등 다양한 지반공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소설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는 감탄할 만한 건설책임자들의 진정한 장인정신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1600 년대 조선에서 이러한 대규모의 신도시 개발사업을 수행할 의지와 능력이 있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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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대부분의 한국인은 역사상 일본이 한국을 앞선 것은 고작 최근의 100여년 정도로 서구문명과 기술을 (야비하게) 수용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양한 책을 읽어보니 이는 반일감정 때문에 진실이 가려진 것으로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일본은 결코 조선에 뒤지지 않고 이미 16-17세기 부터는 오히려 앞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로 방금 언급한 이에야쓰의 에도 신도시 건설을 들 수 있겠다. 또한 일본은 16세기부터 서구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이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는데, 조선은 주자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일본에서는 주자학을 비판하고 독자적인 사고체계를 수립해 나갔다. 이에 대한 정약용의 언급은 주목할 만하다. “이제 그들(일본 유학자들)의 글과 학문이 우리나라를 훨씬 초과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또한 임진왜란 이전에는 단순한 토기 이상을 제작하지 못했던 일본의 도자기 산업이 임진왜란 당시 납치된 조선인 도공을 통해 일취월장하여 이후 중국과 함께 유럽으로 수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유럽의 여러 박물관에 일본도자기가 많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조총은 날아가는 새도 맞출 수 있어서 그렇게 불린다. 그런데 일본은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조총을 받아들여 이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동안 우리 조상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일본 지도제작의 아버지로 조선의 김정호에 해당되는 이노 다다타카는 평균수명이 40세 정도였던 시대에 자신의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하여 50세에 천문학에 입문하여(이는 트로이 문명의 발견자인 슐리만의 경우와 비슷하다) 70대 까지 일본 전역을 다니면서 당시의 최신 천문학, 지리학, 측량학에 근거하여 매우 정밀한 지도를 제작하였다. 일본에 가장 먼저 서구 문명을 전해준 네널란드의 의학기술을 근거로 수많은 의학자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제작한 인체해부도 및 목골(木骨)을 본 조선 지식인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갈라서 아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고, 가르지 않고도 아는 것은 성인만이 할 수 있으니 미혹되지 마라”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그밖에도 네덜란드어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네덜란드 의학서를 번역하는 인고의 과정은 정말로 감동을 넘어서 충격적이었다. 당시 조선사람들이 뭘 하고 있었던가?


19-20세기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러시아가 경쟁을 벌인 것을 일명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고 한다. 최근 매우 두꺼운 그러나 소설같이 재미있는 역사서인 [그레이트 게임: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2015), 사계절] 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는 영국의 보물이라는 인도를 향해 진격해 오는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영국이 필사적으로 저지하는 치열한 싸움이었다(하지만 두 나라가 중앙아시아에서 직접 전투를 벌인 적은 없다). 그런데 20세기가 다가올 무렵 그레이트 게임은 영러가 중앙아시아에서의 세력권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하여 그 무대가 망해가던 조선과 청나라로 옮겨졌다. 러시아는 조선에 부동항을 얻기를 원했고 이를 강력히 반대한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조선의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이후 그레이트 게임은 조선과 중국으로 진출(침략)하고자 하는 일본과 러시아의 경쟁으로 변해가는데 이때 영국은 일본과 영일동맹을 맺고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원했는데(일본은 당시 세계최강이었던 영국해군을 벤치마킹하였다) 그 덕분인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조선은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 특히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일본해군과 결전을 벌이기 위해 유럽, 아프리카, 인도양, 동남아시아를 거치는 약 29,000km 라는 엄청한 거리를 항해하는 동안 당시 세계바다를 지배하던 영국은 사사건건 이를 방해하여, 러시아 해군은 결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짜르의 마지막 함대(2003), 중심]. 즉 러일전쟁의 승패를 가른 쓰시마 해전은 일본이 영국을 대신하여 치른 일종의 대리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만일 조선이 일본보다 앞서 서구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조영 동맹을 맺어 그레이트 게임에서 영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혹시 조러 전쟁이 발발하고 조선이 승리하여 세계적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황당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엔 해전이 없었을 테니 당시 세계최강의 육군을 보유했던 러시아를 물리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국내의 베스트 셀러 순위를 검색해 보면 일본작가의 도서가 항상 상위권에 여러 권 올라와 있다. 특히 소설을 살펴보면 상위 20위권에 일본작가의 책 7권(특히 추리소설)을 볼 수 있다. 반면에 한국소설이 일본에서 얼마나 인기를 얻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는 우리가 일본을 아무리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더라도 실제로는 매우 크게 영향을 받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는 우리가 특별히 일본에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일간의 격차를 정말로 단순하게 비교하고자 한국과 일본의 1인당 GDP로 따져보니 우리가 일본의 약 75% 수준으로 호적수까지는 아닐지라도 우리가 특별히 꿀릴 것도 없다고 본다. 이제는 일본에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선이 일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즉 앞으로는 반일(反日)보다는 지일(知日) 통해 극일(克日)을 지향하는 미래지향적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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