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put image


바리톤 양성원
연세대학교 OB 남성합창단

(GLEE CLUB) 지휘
(
ssgtyang@hanmail.net)


부적응자들 ; ‘세상’에 적응하기보다 ‘자신’에게 적응한 이들

        

미국 MIT 공과대학 내에 있는 한 연구실에서는 1980년대에 이미 터치 스크린, 자율 주행 차량들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세상 사람들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하고 있다. 사막에서 식량을 재배하고, 우리가 잠자는 중에 꾸는 꿈을 통제하고, 또 인간의 뇌를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등... 최근에 어느 시사 다큐멘터리에서 이곳을 “사회 부적응자들의 연구실”(a laboratory of misfits)이라 소개하는 것을 보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음이 나왔다.


1700년대가 끝나고 1800년대가 시작되던 당시는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귀족문화에서 보통 사람들의 문화로 그 중심을 옮겨가고 있었던 때다. 권력과 부를 지닌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심오함, 화려함, 위대함의 자리를 보통 사람들의 명쾌함, 간결함 그리고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 대신하고 있었다(고전주의). 바로 그 가운데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래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린 한 사나이가 등장했다.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는 어려서부터 일찍이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어떤 스승에게 가더라도 6개월이면 넘어섰고, 15살 때부터는 더 이상 배울 스승이 없어 하루 10시간 이상 자기 연습에만 몰두하여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부적응’의 결실로 이 천재는 바이올린으로 사물소리, 동물소리, 바람소리를 내고, 나뭇가지를 활 삼아 켜고, 또 줄 하나의 바이올린을 켜기도 했다. 이런 연주를 본 사람들은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고 그래서 “악마가 나타나 그의 연주를 도왔다"고 밖에는 달리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만나면, 단순히 거부할 뿐만 아니라, 심하게는 비난하고 경멸하기까지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 대상이 무엇이든,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성향 때문일 것이다.

미술 또한 당시 시대 상황과 발걸음을 같이하고 있었다. 그 한 가운데에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780~1867)가 있었다. 그는 선과 색채가 뚜렷하고 균형 잡힌 그림을 추구하며, 19세기 신고전주의를 이끌었다. 그가 흠뻑 빠져서 그린 파가니니의 모습에도 그런 면들이 잘 나타나 있다. 참 간결하고 균형 잡혀 있으며, 선명하고 정적이다.


alt

         

여기에 앵그르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림에 몰두했던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1798~1863)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또한 심취하여 파가니니를 그렸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당시의 화풍에 적응하기를 거부하고, 문학적 '우울(melancolie)'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에 몰두했다. 그래서 그는 파가니니를 그렇게 그렸다. 선이 불분명하고 색채가 전반적으로 어두우며, 균형도 다소 흐트러져 역동적이다. 이처럼 그는 당시 주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을 계속 그렸다. 그리고 결국 그는 고전시대를 대신한 낭만시대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기에 이르렀다.


앵그르의 파가니니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이미지와는 정반대인 ‘선한 사마리아인’의 느낌을 준다. 실제로 파가니니는 자신을 간호하던 하녀를 위한 연주회를 열어, 그 하녀가 무사히 결혼하게 해줬다는 얘기가 있다. 어느 추운 겨울, 길거리의 한 노()악사를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연주하여, 텅 비어있던 모자 한가득 돈을 모아줬다고도 한다. 하지만 들라크루아의 파가니니를 보면 그 느낌은 뒤바뀐다. 악마와의 뒷거래로 얻은 신기에 가까운 소리로 연주한다던 세상 얘기와 딱 맞아떨어진다.


둘은 이처럼 서로를 거부하고 경멸했지만 동시에 그 사이를 이어주는 공통점 또한 있었음에 주의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둘 모두가 주위의 소리와는 상관없이 자신에게 적응하는 데에 시간과 땀을 쏟았다는 점이다. MIT 공과대학의 그 “부적응자들”도, 파가니니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적응할 것인지’, ‘적응하지 않을 것인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에 적응할 것인지’이다. 사실, 위의 모두는 적응하지 못한 게 아니라, 단지 전적으로 자신에게 적응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 반대쪽으로는 적응하지 못한 결과를 나은 것뿐이다.


우리는 ‘세상’을 보며 살아가는 때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고, 내 마음 같은 사람 없다고 그리 푸념할 일도 아닐 것이다. 그게 바로 세상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점 하나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의 시간을 보낸 뒤 돌아보면, ‘세상’은 남되 ‘나’는 없어지고 만다는 것을!


그 와중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어 참 다행이다. 바로 ‘자신’이다.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다시 한 번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의 시간을 보낸 뒤에도 여전히, ‘세상’과 함께 ‘나’ 또한 그 자리에 남아있음을!

p.s. 그의 나이 48세 즈음, 파가니니가 그토록 격정적으로 보냈던 시간들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 즈음에 그는 <바이올린 협주곡 4번>을 썼다. 자신의 마음을 말해주는 듯, 1악장에서 몰아치던 폭풍우가 지나고, 2악장에서 그 선율은 아주 잔잔하고 감성적이다.


근래에 와서, 미국의 한 여가수가 그 2악장에 <나 그대만을 생각해, 내 사랑 Io ti penso amore>이란 제목의 가사가 더해진 곡을 불렀다. 그리고 그 곡은 영화 <파가니니 The Devil's violinist>에서 다시 한 번 숨 쉰다.



[음악감상]

♬  "나 그대만을 생각해, 내 사랑 Io ti penso amore" from 영화<파가니니>

        

        


input image


이철주
강원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cj32@kangwon.ac.kr)



베스트셀러로 살펴보는 요즘 세상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도서들은(즉 베스트셀러) 그 시기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 10위권에는 삶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도서들이 다수를 차지 하고 있다. 하지만 1위에는 의외로 태영호씨의 북한관련 체험기가 올라있으니 이는 현 남북 및 미북관계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이 도서가 정치적인 이유로 금서로 지정될 거라는 괴소문이 한몫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필자도 이를 구매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뤄오던 중 그 소문을 접하자 마자 바로 주문하여 읽었다. 책의 뒷부분 일부를 제외하고는 가독성이 매우 높으며, 다른 북한관련 책을 통해서 알고 있는 내용들이 많아서 금방 완독 할 수 있었다. 북한관련 도서가 이처럼 주목을 받고 많이 팔린 경우는 고 황장엽씨의 도서 이후로는 드문데, 앞으로 유사한 도서가 많이 발간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0년대 이후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6)를 체험했던 중국사람들의 개인사가 해외거주자(특히 망명자)에 의해 무수한 영문도서로 발간되었듯이(아마 국내에선 장융(Chang Jung)의 [대륙의 딸, Wild swans]이 가장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북한개방 혹은 붕괴시 유사한 도서가 쓰나미처럼 몰려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편 영국의 작가 밀른(Milne)의 유명한 동화책시리즈인 [Winnie the Pooh] 가 2~3위를 차지한 것은 정말로 뜻밖의 사건이다. 이 시리즈는 보통 국내에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의 영어교재로 널리 사용되어 왔지 성인들이 읽을 거란 생각은 미처하지 못했었다. 또한 비슷한 내용의 책들이 베스트 셀러 순위에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요사이 너무나 팍팍한 사람들의 인생사가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요즘 많이 회자되는 욜로(You only live once, 즉 미래 또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최우선시하는 태도)와 비슷한 생각이다. 이러한 책들의 제목 및 표지의 글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냉담한 현실에서 어른살이를 위한 to do list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인생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
- 모든 순간이 너였다; 반짝반짝 빛나던 우리의 밤을, 꿈을, 사랑을 이야기하다
 
이러한 책의 주요내용을 대강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무 열심히 일만 하지 말고, 너무 욕심부리지 말아라, 남의 눈치보지 말고, 당당히 살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라,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이를 보면 책을 통해 지식을 쌓거나 재미를 즐기는 것보다는 지치고 찢어진 마음을 위로 받고자 하는 목적이 훨씬 더 큰 것 같다. 또한 10위권 내의 유일한 국내소설인 [82년생 김지영]도 이와 유사하다. 요사이 취업난과 치열한 직장생활에서 힘겨워 하는 20~30 대 젊은사람들의 힘겨운 삶과 아픔이 이러한 현상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기 역사강사 설민석씨의 도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있었고, 지금도 그의 저서는 역사분야에선 수위를 다투고 있다. 역사서를 가장 읽는 필자로서는 매우 반갑고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영국의 경우 1, 2 차 세계대전의 참전용사의 대부분이 사망한 지금도 베스트셀러 리스트 가운데 전쟁사관련 도서 몇 권은 항상 올라있고, 또한 다양한 분야의 역사서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 역사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사실 우리국민이 역사서를 그리 즐겨 읽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물론 역사소설은 좀 읽지만) 유난히 최근 몇 년사이 갑작스레 역사서가 많이 팔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한동안 곰곰히 생각해 보고 학생들에게 물어보아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아마 두가지의 설명이 가능할 것 같은데 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강사들의 대단한 입담 혹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 및 각종 취직 시험에서 한국사과목에서 고득점을 얻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만약 전자라면 참으로 다행스런 현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고 이를 통해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후자라면 요즘의 팍팍한 세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한숨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젊은 사람들이 역사서를 열심히 읽는다는 점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역사를 마치 TV 드라마나 영화처럼 희화화하고, 가볍고 자극적인 내용위주로 접하는 게 무턱대고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많은 경우 저자들이 역사를 전공한 학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깊은 사색과 성찰을 기초로 한 것이 아닌 제한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며, 때로는 학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소수의견 혹은 자신만의 주장을 마치 보편적인 사실인 것처럼 침소봉대 하는 등 많은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는게 사실이다. 필자는 예전에 인기 인문학 강사가 쓴 전쟁사 도서를 읽다가 명백하게 잘못된 사실 몇 개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사실 제대로 된 역사서(일반적인 인문도서를 포함하여)에는 그 주장을 뒷받침 할 참고문헌 등 명확한 근거를 부록으로 확실히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얘기하는 이런 류의 도서에는 참고문헌이 아예 없거나 아주 간략하게만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즐겨있는 영미권 저자들의 역사서를 보면 보통 수십페이지의 참고문헌 및 주석이 꼼꼼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역사서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부터 한때 행정고시 한국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읽었다는 한국사 관련 저명 역사서를 읽고 있는데 참고문헌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예상보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는 있으나 조금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한편 영문도서 가운데 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펴보니 널리 알려진 트럼프 미대통령의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 5위를 차지 하고 있으며, 10위권에 영어학습 관련 교재가 4권이 있다. 트럼프는 쉽고 편한 영어인 이른바 plain english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원서라도 그다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처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도전해 볼 만 하다고 생각한다. 10위권내에 영어관련 학습서가 4권이나 포함된 것은 다소 유감스럽지만, 제대로 된 영문법을 공부하기 위해선 원서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10위권에 3권이나 포함된 Cambridge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된 다양한 학습서를 학습할 것을 추천한다. 영국의 TOEFL 시험이라 할 수 있는 응시자의 영어구사 능력을 보다 합리적으로 평가한다고 알려져 있는 IELTS(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시험 역시 Cambridge 대학교 주관으로 실시된다(리스트의 10위가 IELTS 교재이다). 그런데 전세계에서 널리 인정되는 IELTS 시험이 국내에서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점은 유감이다. 영국은 과거 대영제국시절 많은 식민지에서 다양한 수준의 피교육자들에게 영어교육을 실시한 경험을 축적하고 있어서 이러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영어교재를 집필하기 때문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영어를 제대로 배우기에 매우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다. 대영제국의 유산은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사족이지만 베스트셀러가 좋은 책이라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서 얻은 값진 교훈으로, 무슨 책이라도 구매할 때는 반드시 초반부 몇 페이지라도 정독한 후 결정해야 한다. 얼마 전 읽은 책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이다. 그런데 이 책은 결코 내용이 짧지도 않고 절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다. 더구나 번역서인 이 책의 원서는 [Shortest history of Europe]이란 사실을 알고는 원서에는 한가지, 번역서에는 두가지의 옳지 못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 유럽사=세계사가 된 것인가? 이런 게 마켓팅 전략인가? 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번 진지하게 읽어볼 만한 좋은 책으로 구매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

문화광장' 다른 기사 보기
prev
next
SNS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