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영 완
우리학회 총무부회장
㈜하경엔지니어링 사장
(geoeng@daum.net)
우리 학회에서는 한때 등산동호회가 매우 활발히 운영됐었다. 필자 역시 등산을 즐기는 편으로, 주말이면 종종 산을 찾는다. 이는 단순한 체력 관리 차원을 넘어, 바쁜 일상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기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숨이 가빠지고 허벅지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견디며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심장의 박동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지난 한 주간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서서히 사라진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할 때면, 그동안의 수고가 값진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경험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주며,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원동력이 된다.
산이 품은 지반공학의 서사
지반공학인의 시선으로 산을 바라보면, 산은 단순한 자연경관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지질 기록이자 연구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설악산은 대표적인 화강암 산이지만, 정상 부근에서는 퇴적암이 관찰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많은 높은 산들이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실은 수억~수십억년전 지각운동의 증거이기도 하다. 우면산이나 검단산과 같이 편마암으로 이루어진 산은 토층이 발달하여 토석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이에 따라 사방댐과 같은 지반공학적 대책이 적용되어 있다. 반면 북한산은 화강암 기반으로 이루어져 암반 노출이 두드러지며, 오랜 풍화 작용으로 형성된 독특한 암석 경관을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지질은 실로 다채롭고 흥미롭다. 북한산은 중생대 화강암이 지배하는 희귀한 지질 특성을 보이며, 강화도 서쪽에 위치한 석모도는 고생대 편마암 기반 위에 조선시대 숙종 연간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에 걸친 간척사업의 흔적이 겹쳐 있는 독특한 땅이다. 제주 한라산은 신생대 화산 활동의 산물로서, 현무암과 조면암이 어우러진 생생한 지질 박물관이다. 이처럼 한반도는 지질시대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암석과 지층이 공존하는, 우리 지반공학인에게는 더없이 흥미로운 터전이다.특히 기암괴석은 지반공학적 관점에서 매우 인상적인 자연 현상이다. 층리와 절리와 같은 불연속면에서의 힘의 균형, 그리고 장기간의 풍화 작용이 결합되어 형성된 다양한 형상들은 자연의 정교한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북한산의 오리바위와 코뿔소바위, 설악산 공룡능선의 기암들, 관악산의 왕관바위 등은 수천만 년의 시간을 견뎌온 결과물이다. 이러한 자연의 균형이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경외감과 함께 지반의 불확실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산의 위험, 그리고 지하 안전
그러나 산은 아름다운 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추락, 낙상, 낙석, 타박 등 크고 작은 사고는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 하나 조심, 또 조심하며 위험한 길은 반드시 안전한 길로 우회하는 것, 즉 위험을 인지하고 회피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산행뿐만 아니라 지반공학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필자는 대학원에서 지반공학을 전공한 후, 20대 중반의 풋풋한 나이에 신입사원으로 서울지하철 5호선 영등포~여의도 구간 감리 현장에 배치된 경험이 있다. 당시 안양천 오목교 부근에서 터널 붕괴로 인한 대형 지반 침하가 발생하였고, 이후 양천구의 한 학교 운동장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였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이러한 사건들은 지반공학의 중요성과 동시에 그 위험성을 깊이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이후 수십 년이 지난 현재, 도심 지반 사고는 더욱 복잡하고 대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반 침하, 땅꺼짐, 옹벽 및 비탈면 붕괴 등 다양한 형태의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도시화, 노후 인프라, 지하 매설물의 증가, 기후변화로 인한 집중호우, 그리고 설계 및 시공상의 문제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반공학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사고 발생 이후의 대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위험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이 우리의 핵심적인 책무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후 인프라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정밀 진단, 위험 지역에 대한 선제적 보강, 그리고 연구 성과와 현장 경험을 정책과 제도로 연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학회 차원에서도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사회와 공유하고, 관련 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산을 오르며 발아래 지반의 변화를 살피듯, 우리는 우리 사회가 보내는 작은 신호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균형이 깨지기 전에 이를 인지하고, 위험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판단이야말로 안전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일 것이다.
정상에 설 때마다 눈앞에 펼쳐진 그 광활한 전경을 보면서 느끼는 경외감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큰 책임감을 일깨워 준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추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기를 권한다. “지반공학인으로서 사회의 안전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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